― 걷지 못해도, 살아야 하니까 ―
> “나는 여기서 버티고 싶어요.
돌아가면, 나는 다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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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등학생이던 시절, 부모님과 함께 이 땅에 왔다.
처음엔 짧은 체류일 줄 알았지만, 미국에서의 삶은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겼다. 친구도, 학교도, 교회도 이곳이었고, 그에겐 이 땅이 곧 삶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이었다.
가족과 함께 간 스키장에서, 그는 스노우보드를 타다 넘어졌다. 그리 대단치 않아 보였던 사고는 결국 그를 하반신 마비 상태로 남겨놓았다.
그날 이후 그는 다시는 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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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앉아 있는 휠체어는 날마다 그에게 말없이 무게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몇 해에 걸친 재활을 견디며, 신학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작은 지역 교회에서 목회를 맡고 있다. 예배 시간마다 그는 휠체어 위에서 설교를 하고,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들을 안아준다.
그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몸은 다쳐도, 마음은 굽히지 않은 사람.”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그의 체류 신분은 아직도 ‘정식 영주권자’가 아니다. 여러 차례 서류를 시도했지만, 그가 성인이 된 뒤 들어선 이민국 정책은 더 가혹해졌고, 요즘처럼 단속이 심해진 상황에선 일상조차 위태롭다.
워킹 퍼밋 하나에 의지해 버티고 있지만,
그마저 갱신이 늦어지면 모든 것이 정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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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의 부모는 조용히 짐을 싸기로 했다.
“이제는 우리라도 돌아가 있어야지.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너라도 살 길을 찾아야 하잖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모의 결정이 옳다는 걸 알면서도, 그 빈 집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돌아간다는 말.
그 말 속에는 고향의 풍경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잃어버릴 일상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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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국에는 그를 위한 제도가 없다.
휠체어 장애인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도, 신학을 전공한 젊은 목회자를 받아줄 공간도 부족하다.
거기선 그는 ‘외국 물 먹은 사람’도, ‘장애인’도, ‘무국적에 가까운 이방인’이다.
“내가 그곳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는 그 말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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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떠올릴 때마다 ‘버티는 용기’라는 말을 생각한다.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명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지워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는 여전히 매주 설교문을 쓰고, 이웃에게 전화를 걸고, 성경 공부를 준비한다.
하루하루가 ‘그날이 아닐까’ 불안하면서도, 그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감사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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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여기서 버텨보려고요.
여기가, 제 사명이 있는 곳 같거든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고요한 말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 “이 이야기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실을 단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