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보다 먼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그들은 국경을 넘었지만, 나라에 도착하지는 못했다.
여권은 있었고, 이름도 있었고, 태어난 곳도 분명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것은 행정의 표 밖으로 밀려났다.
그들은 지금,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은 한 나라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도 있고, 유럽에도 있고, 아시아에도 있다.
그리고 한국에도 있다.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체계가 사람을 따라오지 못할 때 생겨나는 틈의 문제다.
우리는 흔히 묻는다.
왜 합법적인 길을 택하지 않았느냐고.
왜 돌아가지 않느냐고.
왜 그 자리에 머무르느냐고.
그러나 그 질문은 대부분 이미 늦은 시점에 도착한다.
처음엔 누구나 ‘임시’였다.
잠시 일하고 돌아갈 생각이었고,
아이 학기 하나만 마치고 결정하겠다는 마음이었고,
치료 하나, 돈 하나, 기다림 하나만 넘기면 될 거라 믿었다.
그렇게 ‘잠깐’이라는 말은 해를 건너고,
해는 다시 몇 해가 된다.
그 사이 국가는 변한다.
정권이 바뀌고, 법이 바뀌고, 정책의 온도가 달라진다.
어제는 괜찮았던 것이 오늘은 위험이 되고,
어제는 묵인되던 삶이 오늘은 단속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그렇게 빨리 방향을 틀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는 속도,
몸이 늙어가는 속도,
가족이 기대는 속도는
정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생겨난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사람들.
그들은 국적을 잃은 것이 아니라
국적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다.
법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법이 도달하지 못한 자리에 오래 머문 사람들이다.
이들을 향해
“신고하면 포상금을 준다더라”는 소문이 돌 때,
사람들은 묘하게 안도한다.
문제가 ‘사람’이 아니라 ‘제도’라는 사실을
다시 개인의 선택으로 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람을 신고한다고 해서
국가가 상금을 내미는 일은 흔치 않다.
국가는 사람을 사냥하듯 다루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게 정리할 뿐이다.
그 정리의 과정에서
사람은 숫자가 되고,
사연은 서류가 되고,
시간은 기한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이 사람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연재를 쓰며 나는 점점 분명해진다.
이 글은 누군가를 옹호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불법을 미화하려는 글도 아니다.
이 글이 붙들고 싶은 것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 서 있는 인간의 얼굴이다.
법은 필요하다.
국가는 경계를 가져야 한다.
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작동하는 동안에도
사람은 사람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사람들이란,
국적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태에 오래 놓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늘도 묻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 속하나요?”
대신 이렇게 묻는다.
“오늘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전화벨이 울리지 않기를 바라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를 넘긴다.
그리고 우리는
사건이 터졌을 때만 그들을 본다.
체포되었을 때,
추방되었을 때,
비극이 되었을 때.
하지만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그 긴 ‘아무 일도 없던 날들’ 동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었는가.
『투명한 사람들』은
어느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리고 동시에,
어느 나라에서나 반복되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글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다.
다만 기록한다.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사람들,
그러나 분명히
이 세계 어딘가에서
살아 있었던 사람들의 흔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