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이 아니라 삶을 건넌 사람
어제 출근길에, 나는 누군가로부터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고 했다.
그녀는 캐나다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왔다고 했다.
차도 아니고, 배도 아니고, 비행기도 아닌,
그저 두 발로.
여덟 날 밤낮을 걷고 또 걸었다고 했다.
숲을 지나고, 물을 건너고, 밤에는 숨을 죽이고,
낮에는 몸을 숨겼다.
얼마나 추웠는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이야기는 그 부분에서 늘 흐려졌다.
고생의 구체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간신히 미국 땅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남편을 만났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환영도 없었고, 표지판도 없었고,
“여기까지 잘 왔다”는 말도 없었다.
다만 그 자리에 사람이 하나 더 서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미국에 왔을까요.”
그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땐 다들 그렇게 불렀어요.
어메리칸 드림이라고.”
그 말은 설명 같았지만, 사실은 설명이 아니었다.
꿈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이미 일어난 일을 나중에 정리하기 위해 붙는다.
그 순간의 선택은 대개 꿈이 아니라
살아야 한다는 감각에 더 가깝다.
지금 그녀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름도, 기록도, 국적도 남아 있지 않다.
그녀가 여덟 날 밤낮을 걸었다는 사실만
이야기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연재를 쓰며 나는 자주 깨닫는다.
사람들이 미국을 말할 때,
그들이 떠올리는 것은 나라가 아니라
어떤 가능성의 밀도라는 것을.
넘어져도 끝이 아닐 것 같다는 감각,
늦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
지금보다 조금 나은 평균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국경이 아니라 삶을 건너게 만든다.
그녀가 걸었던 여덟 날 밤낮은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다.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고,
통계에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누군가의 생에는 존재했던 시간이다.
『투명한 사람들』은
이런 시간들을 기록해 왔다.
사건이 되지 못한 이동,
기사로 남지 않은 선택,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걸음들.
그녀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지만,
그녀가 걸었던 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도 누군가는
그 길의 다른 지점에서
다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연재는 계속해서 묻는다.
사람들은 왜 여기까지 오는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와야만
사람처럼 살 수 있다고 믿게 되었는가를.
여덟 날 밤낮을 걸어 도착한 것은
미국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녀가 건넌 것은
국경이 아니라,
그 이전의 삶이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실을 단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