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오래 서 있었던 사람들
이 연재를 쓰며 나는 끝내 하나의 답을 얻지 못했다.
누가 옳았는지, 무엇이 정당했는지, 어디까지가 이해의 범위인지.
그 질문들은 매번 글을 쓰는 손끝에서 멈췄다.
대신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 속 사람들은 특별하지 않았다.
영웅도 아니었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조용히 일했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애썼으며,
눈에 띄지 않게 하루를 넘기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늘 사건이 일어난 뒤에야 사람을 본다.
체포가 있었을 때, 추방이 결정되었을 때,
혹은 뉴스 자막으로 이름이 흘러갈 때.
그제야 출신을 묻고, 이유를 따지고, 선택을 분석한다.
그러나 그 질문들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수많은 날들에는
그 누구도 그들의 안부를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연재를 읽은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출근 전의 짧은 틈,
잠들기 전의 고요한 밤,
혹은 커피가 식어가던 오후.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안전했고,
이야기 속 사람들과는 다른 쪽에 서 있었다.
그 사실은 죄가 아니지만,
외면이 오래 반복되면 결국 하나의 습관이 된다.
『투명한 사람들』은
누군가를 변호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었다.
또 어떤 제도를 고발하기 위한 기록도 아니었다.
다만 제도와 삶 사이,
법과 일상 사이에 오래 멈춰 서 있던 얼굴들을
잠시 정면에서 바라보려는 시도였다.
그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특정한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이동하는 세계가 만들어낸 공통의 그림자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어떤 나라를 두둔하지도,
어떤 선택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저 묻는다.
우리는 그 그림자를 언제부터 보지 않게 되었는지를.
이제 이 연재를 멈추려 한다.
더 쓰면 같은 이야기를 다른 이름으로 반복하게 될 것 같아서,
같은 침묵을 다른 얼굴로 옮겨 적게 될 것 같아서.
멈춘다는 것은 잊겠다는 뜻이 아니라,
이만큼 보았다는 고백에 가깝다.
오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많은 삶이
사건이 되지 않은 채 지나간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투명한 사람들』은 끝난다.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남기고 싶다.
우리는 그들이 보이지 않던 시간에,
과연 어디에 서 있었는가.
“이 이야기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실을 단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