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을 꿈꾸는 지도

왜 사람들은 미국을 ‘평균’이라고 부르는가 —

by 운조


그의 고백은 길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저는 최하층 검은 인생을, 미국에서 평균 정도 되는 인생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평균’이라는 단어가 먼저 마음을 쳤다.

성공도 아니고, 출세도 아니고, 남들 위로 올라가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그는 그저 말한다. 평균으로 살고 싶다고.

그가 말하는 평균은 아마 이런 것일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움직이고,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공부가 막히면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돈이 부족하면 장학금이나 제도를 찾아볼 수 있고,

실수해도 다시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삶.

누군가에겐 당연한 하루.

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평생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미래.

그는 열여덟이었다.

학업이 무너졌고, 몸이 따라 무너졌다.

결국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학교를 떠난다는 건 교실을 나오는 일이 아니라,

또래의 시간표에서 내려오는 일이기도 하다.

종이 울리는 복도에서 멀어지는 만큼

자신이 사람들 눈에 덜 보이는 존재가 되는 느낌.

그때부터 도움을 구할수록 말이 더 줄어드는

이상한 침묵이 시작된다.

그는 여러 길을 적어 놓았다.

방송대, 커뮤니티 칼리지, 편입, SAT, 장학금, 결혼, 취업, 군대….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계획이 많네.”

하지만 그 목록은 계획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출구들에 가까웠다.

어두운 방에서 손끝으로 벽을 더듬어

문고리를 찾는 것처럼.

그리고 그 목록 가운데,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언제부터인가 어떤 청년들에게

하나의 지도가 되어버렸다.

성공의 나라라서가 아니라,

“평균이 가능한 나라”처럼 보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대학을 가기 위해

모든 길이 한 줄로만 이어져 있지 않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곧장 명문대를 가는 길만 있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다시 시작해 편입하는 길도 있고,

일을 하다가 공부로 돌아오는 길도 있고,

늦게 방향을 바꾸는 사람을 “탈락자”라고만 부르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물론 현실의 미국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학비는 여전히 비싸고, 의료비는 더 비싸고,

서류 한 장이 삶의 속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그가 말하는 미국은 ‘현실의 미국’이라기보다, 평균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의 이미지’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이곳을 “평균”이라고 부른다.

그 말은 결국 이런 뜻일 것이다.

“여기라면, 내가 다시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다.”

“여기라면, 내가 무너진 채로도 살아볼 수 있다.”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문장들 사이에서 어떤 장면을 본다.

몸이 나빠져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에게 물었을 것이다.

‘나는 어디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때 미국은 지리적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더 늦어도 되는 곳.

실수해도 다시 갈 수 있는 곳.

평균으로 숨을 쉬어도 되는 곳.

그래서 그가 원하는 건

미국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이 상징하는 어떤 ‘구조’일지 모른다.

돌아갈 수 있는 계단.

넘어져도 손잡이가 있는 계단.

하지만 우리는 알지 않는가.

그 계단이 누구에게나 같은 높이로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을.

누군가에겐 발이 닿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너무 높다는 것을.

그래서 그의 목록은 더 길어진다.

편입, 장학금, 취업, 군대….

그는 선택지를 늘릴수록 안전해질 거라 믿는다.

그러나 그 선택지들 사이에는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불안이 숨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성공담’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은 너무 멀고,

너무 쉽게 무너진다.

대신 이렇게 기록하고 싶다.

그가 꿈꾸는 건

특별함이 아니라 평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평균이

누군가에겐 목숨처럼 절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묻는다.

왜 미국에 가고 싶으냐고.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하지만 질문은 늘 늦다.

사람은 대개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

그를 제대로 보지 않는다.

그가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가 “평균을 살고 싶다”고 말할 때,

사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살고 싶습니다.

사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이 연재가 붙들고 싶은 것은

한 나라의 국경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하는

작은 안전망들이다.

그 망이 느슨해질수록

사람은 더 많은 선택지를 늘어놓고,

더 먼 나라를 상상하고,

더 아슬아슬한 길을 계산한다.

그가 미국을 말했을 때,

나는 그게 단지 이민의 욕망이 아니라

삶을 회복하려는 마지막 상상력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오늘도 누군가는

‘평균’을 위해 먼 지도를 펼친다.

그 지도 끝에 미국이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다른 나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도 아래 깔린 마음은 비슷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무너지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한다.

도망치려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보려는 사람을.

대단한 꿈이 아니라,

평범한 내일을.

그리고 이번에는,

사건이 되기 전에 그를 보자고.

무너지기 전에 이름을 불러주자고.

“괜찮니”라는 말 한마디가

어떤 사람에겐 평균으로 가는 첫 문이 될지도 모르니까.


“이 이야기는 보도와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실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