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판을 짜는가
뉴스를 보다 보면
가끔 이상한 장면을 마주한다.
한쪽은 말한다.
“협상이 잘 되고 있다.”
다른 쪽은 말한다.
“협상 자체가 없다.”
둘 중 하나는 틀린 말처럼 보이는데,
이상하게도 세상은 그 둘을 동시에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왜일까.
정치는 사실을 다루는 것 같지만,
그보다 먼저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가깝다.
누군가 먼저 말한다.
“지금 우리는 협상 중이다.”
이 한 문장이 깔리는 순간,
보이지 않던 무대가 하나 만들어진다.
그 무대 위에서는
이제 질문이 이렇게 바뀐다.
협상이 잘 되고 있는가,
아니면 잘 안 되고 있는가.
중요한 건,
이미 그 질문 안에는
하나의 전제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협상은 존재한다.”
그래서 상대가 아무리 말해도
그 무대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없다.
“협상은 없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 말은 결국
‘협상’이라는 단어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을 때처럼.
“우리는 지금 거래 중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대답한다.
“아니다, 거래가 아니다.”
둘은 서로 부정하고 있지만,
이미 둘 다
‘거래’라는 이야기 속에 들어와 있다.
이것이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사실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기준으로 생각할지를 바꾼다.
누가 먼저 이름을 붙이느냐,
누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느냐에 따라
현실은 다른 얼굴을 갖는다.
그래서 때로는
실제 협상이 있는지 없는지보다
“협상이 진행 중이다”라는 말이
더 큰 힘을 갖는다.
그 말 하나로
사람들의 시선이 정해지고,
논쟁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누가 맞고 누가 틀린지를 따지지만,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이 이야기는
누가 시작했는가.
그리고 나는
그 이야기 안에서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밖에 서 있는가.
생각해 보면
이건 국제 정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에서도 우리는
수없이 많은 프레임 속에 들어간다.
누군가는
“이건 네가 잘못한 일이야”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건 상황이 그런 거야”라고 말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둘 중 하나의 이야기 안에 서서
자신을 설명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선택은 따로 있다.
그 이야기 자체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것.
프레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강력하다.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기 전까지는,
이미 그 안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든
한 번쯤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인가.
어쩌면
세상은 언제나 두 개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 안으로
조용히 끌려 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 사람이
이미 절반쯤은
이긴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