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필요 없는 장면들

아이들은 그대로였고, 나는 조금 느려졌다

by 운조



요즘 나는 아이들이 나오는 오래된 프로그램을 본다.


이미 마침표가 찍힌 이야기들이다.

그때 아이였던 얼굴들은 이제 훌쩍 자라 어디선가 각자의 고단한 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만큼은 아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아이들은 웃다가 울고, 울다가 다시 잠든다.

그 사이에는 어떠한 인과관계도, 구태여 보태는 이유도 없다.

이유를 묻지 않아도 삶은 다음 장면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무엇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역설적으로 나의 마음을 놓이게 한다.


나는 한동안 모든 것을 설명하며 살아왔다.

왜 그랬는지, 왜 이곳에 서 있는지, 그리고 왜 아직 나는 괜찮은지.

세상은 늘 설명을 요구했고, 말이 앞서지 않으면 불안이 뒤따랐다.

그렇게 말이 분주하게 앞서 나가는 동안, 나의 몸은 자주 제자리에 머물렀다.

하지만 아이들은 앞서지 않는다.

감정이 파도처럼 먼저 밀려오고, 말은 아주 늦게 따라오거나 끝내 도착하지 않기도 한다.

아이들은 말이 없어도 이미 충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그 충만함을 굳이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무엇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억지스러운 교훈을 찾지도, 거울 보듯 나를 반추하지도 않는다.


그저 본다.


보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화면을 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 앞에 잠시 머물 뿐이다.

변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다.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표정을 정교하게 정리하며, 이쯤이면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검열하는 쪽.

그 영악한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 빨라졌고,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는 일에는 지나치게 익숙해졌다.

아이들은 결코 빠르지 않다.

울음을 멈추고 다시 웃기까지, 그 사이에는 어떠한 다짐도 결심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 단순한 왕복이 하루의 전부인 것처럼

아이들은 온몸으로 생을 살아낸다.

나는 그 무구한 장면들을

이미 오래전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듯 조용히 응시한다.

화면을 끄면 방 안은 다시 적막해진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사라지고, 하루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눅눅한 몸만 남는다.

그런데도 그날 밤은 이전보다 조금 덜 무겁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얻어서가 아니라, 나에게 아무것도 보태지 않아서 그렇다.

아이들은 이미 그 시간을 떠났고,

나는 아직 이 자리에 남겨져 있다.

그 사실이 서로를 뜨겁게 위로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하루를 매듭짓게 한다.

요즘의 나는 설명이 필요 없는 장면 앞에 자주 선다.

그 장면들은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지지만,

사라진 뒤에도 몸 어딘가에 침전물처럼 남아

나의 속도를 조금 늦춘다.

그것으로 충분한 날이,

우리에게는 가끔 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