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시끄러운 날, 나는 섬으로 간다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와 마돈나의 라 이슬라 보니타 사이에서

by 운조


어떤 날은 현실이 너무 또렷해서 숨 쉴 틈이 없다.

해야 할 일과 미뤄둔 걱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날, 나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섬 하나를 떠올린다.


지도로는 찾을 수 없지만 마음이 먼저 알고 있는 곳.

아주 조용하고 따뜻하며, 무엇보다 나를 원래의 나로 되돌려놓는 장소다.

그 섬의 이름을 예이츠는 이니스프리(Innisfree)라고 불렀다.

그의 시 「호수 섬 이니스프리(The Lake Isle of Innisfree)」에서 그는 도시를 떠나 작은 오두막을 짓고 콩밭을 일구며 벌을 치겠다고 말한다. 그가 그리는 풍경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소박하다.

적막에 가까운 평화, 자연의 반복, 그리고 스스로에게 침잠하는 고요.

그곳에서는 사람의 목소리보다 바람 소리가 먼저 들리고, 길보다 호수가 먼저 반짝인다.

예이츠가 그곳에서 찾고자 한 것은 화려한 휴양이 아니라 본연으로의 귀향이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의 소음을 줄이며, 평화가 갑자기 쏟아지는 대신 천천히 스며드는 시간을 회복하는 일이다.

마돈나의 노래 〈La Isla Bonita〉를 들을 때도 나는 비슷한 문을 연다.

다만 이 문은 조금 더 따뜻하고 밝으며 감각적이다.

“Last night I dreamt of San Pedro.”

어젯밤 나는 산 페드로를 꿈꾸었어요.

이 한 문장이 들리는 순간 노래는 이미 풍경을 완성한다. 산 페드로가 어디인지 몰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지명이 아니라 ‘dream’이라는 단어다.

그 단어 하나가 현실의 경계를 부드럽게 허문다. 마음이 먼저 그곳에 닿고, 몸은 뒤늦게 그 온기를 따라간다.

라 이슬라 보니타의 낙원은 눈부시다. 햇살과 바람, 그리고 라틴 특유의 느긋한 리듬이 몸의 긴장을 천천히 풀어준다.

예이츠의 섬이 고요의 섬이라면, 마돈나의 섬은 생동의 섬이다.

한쪽에서는 침묵 속에서 마음이 맑아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리듬 속에서 마음이 가벼워진다.

자연의 소리와 음악의 선율.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둘은 같은 갈망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두 섬은 같은 일을 한다.

시끄러운 현실로부터 마음을 잠시 옮겨 놓는 일.

사람은 늘 제자리에만 있으면 쉽게 지친다. 그래서 마음이 숨 쉴 틈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시를 읽고, 누군가는 노래를 튼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해지기 전의 원래의 감정을 되찾는다.

나는 이니스프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그곳으로 가리라”는 결심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떠나겠다는 마음만으로도 현실의 무게는 이미 조금 가벼워진다.

“꿈꾸었다”는 고백 역시 마찬가지다.

꿈은 현실의 도피처가 아니라 메마른 일상에 물을 붓는 방식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잠깐 들이마시는 다른 공기 같은 것.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섬을 하나씩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 섬은 멀리 있지 않다.

어느 날 문득, 한 줄의 시처럼

노래의 첫 소절처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부른다.

나는 지금도 그 두 섬 사이를 오간다.

소리가 싫어질 만큼 지칠 때는 예이츠의 섬으로 가고,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을 때는 마돈나의 섬으로 간다.

어느 쪽이든 그곳에는 현실 바깥의 평화가 있고, 다시 돌아올 힘이 있다.

아마 삶이란 잠시 떠났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현실이 너무 무겁다면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섬은 멀리 있지 않다고.

시 한 편, 노래 한 곡이면 충분하다고.

마음이 잠깐 숨을 고를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오늘을 살아낼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여전히 시를 읽고 노래를 듣는 이유다.


떠나지 못하는 날에도 괜찮다.

시와 음악이 대신 나를 섬으로 데려다주니까.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