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24.9.3 - 25.2.23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일상적인 세계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통해 익숙한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합니다. 미술관 공간은 그 자체가 크고 작은 조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무대이며, 관람객은 그 안에서 스스로 새로운 의미들을 찾아 나아갑니다. 작가들이 창조한 《Spaces》라는 공간에서 다양한 이야기 요소들을 발견하고 펼쳐 나아가는 주인공이 되어 보길 바랍니다.
궁극적으로 엘름그린&드라그셋이 여러 소주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지금 당신이 굳게 맞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가 아닐까 싶다.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전시를 찾은 관람객, 길거리를 지나가며 당신들의 공공작품을 보게 될 시민의 인식에 균열을 내는 것으로 삼은 본질적인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이성애적 규범을 따르는 스칸디나비아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그래서 우리가 주변의 많은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아니 더 정확히는 세상을 다른 관점으로 본다는 걸 꽤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를 대변해주는 것이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에 사회적 규범을 전반적으로 의심하게 된 것 같다. 예술계에 발을 디뎠을 때는 이곳에 많은 관행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미술작품을 보여줄 때면 항상 동원되는 화이트 큐브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표준화된 형식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왜 어떤 위계나 루틴이 존재하는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 과정에서 영감을 얻었다. 우리가 처음 만든 연작 <Powerless Structures>는 철학자 미셸 푸코의 아이디어를 출발점 삼았다. 푸코는 구조 자체는 어떤 힘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구조는 바뀌거나 교체될 수 있고, 그 의미는 본질적인 게 아니라고 봤다. 대신 구조는 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상호작용을 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고 여겼다. 우리는 공간과 사물의 미감과 기능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권력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도전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익숙한 대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해석의 공간을 열고 싶다.
«Spaces»를 관람하면서 마치 탐정과 같은 심정이 될 것 같다.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일까?’ 혹은 ‘회화작품을 하는 작가인가?’라는 물음을 떠올리게 될 듯한데, 그곳에 설치한 50여 점의 작품들로 일종의 ‘별자리’를 그리며 의도한 바가 있다면?
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 전시 공간이 작품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를 없애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상의 공간과 비슷한 공간에 작품을 놓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예술작품과 평범한 사물의 위계가 없어진다. 모든 사물이 어떤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전시를 할 때 직접 창작한 작품과 ‘발견된 오브제’ 모두에 디자인적인 요소를 넣으면서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관람객들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었는데, 관람객이 빠져들거나 파고들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몰입적인 경험은 관람객 각자가 작품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끈다. 자기 경험을 돌아보기도 하고, (우리가 살짝 뒤틀거나 변형시켜둔) 익숙한 오브제와 상황을 새롭게 보기도 한다. 작품에 머무르는 사람을 ‘누구’로 상상하는지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대신 열어두고 싶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세련되고 멋진 가구로 꾸며져 있음에도 화목한 가족이 사는 집은 아니라는 것이다.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느껴지고, ‘그림자에 숨어 있는’ 무언가가 있다.
이 거울은 '집'이라는 전시공간의 출입문 바로 앞에 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봤던 거울인데, 나갈 때 저 문구를 보니 기분이 ㅎㅎ.. 다신 보지 말자고? ㅎ.. 킹받네
이번 전시에도 <City in the Sky>가 등장하는 걸로 알고 있다. 건축물이 밀집된 도시의 형상이 천장에 종유석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는 <City in the Sky>와 <The Hive>에서 보여준, 오늘날 세계적인 대도시에 대한 성찰과 비전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City in the Sky>는 중국, 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전역의 대도시를 여러 차례 여행한 데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고 2019년 아트 바젤 홍콩의 인카운터 섹션에서 선보였다. 이 작품을 서울에서 선보이게 되는 감회를 듣고 싶다. 거꾸로 매달린 건물들 가운데 혹시 서울의 건축물도 있나?
<City in the Sky>는 이른바 ‘스타 건축가’들이 설계한 여러 건물과 우리가 자체적으로 만든 건축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도시 풍경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 세계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점점 더 비슷해지고, 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랜드마크 건물이 많아지는 현상을 고찰한다. 이미 알고 있거나 실제로 본 건물과 비슷한 부분을 찾아보는 건 관람객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우리는 <City in the Sky>가 ‘공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라고 본다. «Spaces» 전시의 공간을 가득 채운 설치작품들은 도시생활에 대한 인류학적인 연구를 보여주는 극도의 클로즈업이지만 <City in the Sky>는 거대한 도시를 인형의 집처럼 축소해서 표현한 작품이다. 이처럼 상반된 규모가 전시에서 각기 다른 연상을 자아내고, 관람객에게는 다양한 관점에서 도시를 생각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한다.
이번 전시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가 안돼서 영상을 차분히 보려 했지만-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전시를 기획하고 설치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 형식이라 10분 보고 그냥 나와버림
이번 전시에도 수영장이 등장한다.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예술세계에서 반복되는 수영장 모티프는 공통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이번에 특별히 더해지는 의미가 있다면 말해달라.(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의 북유럽 파빌리온에서는 관객을 수영장에서 일어난 의문사 사건의 현장으로 안내한 <Death of a Collector>를, 2016년 뉴욕에서는 록펠러센터 앞에 수직으로 선 수영장 형태의 공공작품 <Van Gogh’s Ear>를 선보였다.)
수영장이 지닌 미학적인 측면 외에도 복합적인 사회적 의미에 주목한다. 혼자서 쓰는 개인 수영장은 ‘아메리칸 드림’이나 중산층이라는 지위, 성공과 연관될 수 있다. 반면 공공 수영장은 커뮤니티의 개념, 즉 계층이나 배경에 상관없이 신체적 경험을 나누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공 공간이라는 개념을 나타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버려진 수영장 작품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문제를, 시민 공간의 상실과 우리 삶에서 그런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루는 쪽이다. 인간이 수영장을 만드는 이유 자체에도 약간의 멜랑콜리가 들어가 있다. 자연을 모방하고, 도시에 어울리는 연못이나 호수의 대체물을 만들어내려는 거니까 말이다. «Spaces»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한다. 수영장은 잠재적으로 연결과 활동이 일어나는 곳이지만, 비어 있기 때문에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수영장에 있는 흰색 래커를 칠한 남성 조각작품들은 혼자만의 활동을 하고 있거나 테크 기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일상에서 모두가 겪고 있는 단절과 고립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