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을 위해 퍼포먼스마케터의 이력서를 검토하다 보면 요즘 SQL, Python 등의 언급이 부쩍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면접 때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90%는 '배우는 중'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함정이지만...
나도 SQL을 전혀 하지 못했다. SQL은 커녕 엑셀의 SUM함수만 아는 상태로 일을 시작했다. 초반 몇 개월은 엑셀만으로도 업무가 가능했지만 점점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다뤄야 하는 엑셀의 행 개수가 1,048,576개 행을 넘어섰고, 키워드 리포트를 만들기 위해 Vlookup을 한번 하려면 1시간이 필요했다. 파일이 돌아가면 다행이지, 고스펙의 DELL 노트북도 버티지 못하고 갑자기 꺼지기 일쑤였다 (소위 뻑이 났다).
일을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SQL을 시작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오피스에서 일하는 내가 본사 동료들에 비해 기술적으로 많이 뒤처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사에 있는 많은 마케팅 팀원들은 SQL은 기본이고 R, Python 등으로 분석, 자동화가 이미 많이 고도화되어 있었다. 나는 데이터 핸들링에 한계가 있으니 분석도 제대로 못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Vlookup이 다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그리고 데이터를 더 깊게 보고 싶어도 추출을 항상 다른 팀원에게 부탁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 수정사항이 있을 때 한번 더 요청하기가 망설여졌다.
일단 다른 사람이 쓴 쿼리를 그대로 복사해서 돌려보고, 조건을 수정해보고, 컬럼을 추가해보면서 조금씩 체득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쿼리를 직접 써보기도 하고, 구글링을 하며 새로운 함수를 써보며 나만의 쿼리를 써갔다. 그렇게 2년 정도 되었을 때, '내가 원하는 결과는 거의 다 추출할 수 있는 수준'이 된 것 같다.
일을 또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Tableau(태블로)를 시작했다.
입사 후 거의 1년 동안 매일 아침 직속 매니저에게 데일리 리포트를 보내야 했다. 엑셀 로데이터를 가공하여 피벗테이블을 만들고 차트를 만들고, 분석까지 해서 요약을 정리하여 이메일로 보냈다. 캠페인의 볼륨이 커지는 만큼 내가 다뤄야 하는 데이터의 양도 크게 늘어났다. 용량이 1.2GB인 엑셀 파일을 다뤄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엑셀의 차트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다.
본사에서는 이미 데이터 시각화 툴인 태블로를 도입한 지 꽤 되었고, 직접 대시보드를 만드는 마케터도 몇 명 있었다. 나도 일단 급하니 당시 내가 쓰던 차트를 그대로 태블로로 구현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막상 다뤄보니 시각화하기에 굉장히 편하고 자유도가 높았다. 처음엔 엑셀 로데이터 파일을 연결했고, 그 이후엔 SQL로 직접 데이터베이스에 연결했다.
하다 보니 태블로로 대시보드를 만드는 게 너무 재밌었다. 밤새도록 만들었다. 공식 도움말 페이지를 뒤지고, 구글링하고, 다른 사람이 웹에 올려놓은 대시보드도 구경하고 활용하고... 나중엔 어쩌다 보니 우리 팀의 데일리 대시보드를 다시 다 만들었는데, 태블로에 미쳐있는 마케팅 VP가 '최근에 본 대시보드 중에 가장 beautiful' 하다는 칭찬을 했다.
시각화뿐만 아니라 대시보드를 스크린샷 형태로 이메일 발송을 설정해서 매일 아침 출근길에 모바일로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작업도 했고, 동료의 도움을 받아 워크북 파일을 에이전시에 자동 발송해서 에이전시는 무료인 태블로 뷰어로 성과를 확인할 수 있게끔 했다. 인하우스, 에이전시 모두가 엑셀 (짜치는)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일을 더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Python(파이썬)을 시작했다.
SQL과 태블로로 데이터 추출, 시각화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자동화'에 관심이 생겼다. 사실 관심이 생겼다기보다는 이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자동화를 하지 않기엔 마케터의 삶이 너무 힘들다.
리포트를 뽑는 것, 대시보드를 만드는 것, 업로드/셋팅하는 것 등 그 어느 것 하나 수동으로 하기에 힘들지 않은 것이 없다. Vlookup 한 번 하는데 30분이 걸리는데 분석은 대체 언제 하나 싶었다.
Vlookup 이 너무 힘들어서 처음으로 파이썬으로 작성한 5줄짜리 코드다. 파이썬에 대한 그 어떤 지식도 없던 채, 구글링을 해가며 더듬더듬 작성한 코드이다. 그래도 이 5줄짜리 코드가 100시간 이상을 줄여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좀 더 길고 복잡해진 코드를 쓰고, 광고 관리자에서 불가능하고 API로만 가능한 기능을 사용한다. 재미있어서 한 것이 절대 아니다. 일을 줄이고 싶어서, 내 삶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하려고 하게 되었다. 물론 개발팀에 요청이 가능했고 기다리면 해줄 일이었지만, 기다리는 동안의 내 시간과 에너지도 소중하다.
간절하기 때문에 뛰어든다
모든 마케터가 SQL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자동화까지 직접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주게끔 또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도 능력이다.
그렇지만 마케팅만을 위한 분석팀, 개발팀이 별도로 있는 회사가 국내에 얼마나 있겠는가. 그리고 경험상 개발자는 항상 바쁘고, 거의 언제나 다른 우선순위가 있다. 내 요청사항이 우선순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보다, 당장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내 업무시간이 늘어나고 내 우선순위의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더 싫었다.
외국어를 배울 때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이 일단 뛰어들게 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하루에 단어 n개, 문장 n개를 외우는 것보다 외국에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더 나를 간절하게 만들고 뛰어들게 만든다.
SQL, Python 강의를 듣고 책을 읽는 것보다 지금 당장 내가 간절하게 해결해야 하는 일에 활용해보는 것.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