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는 소리만 들리던 조용한 자습실
갑작스럽고 큰 벨소리에 소음의 발원지로 아이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황급히 벨소리를 끄는 아이에게 조용히 걸어갔다. 마찬가지로 적잖이 당황했을 그 아이에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야, 진동이나 무음으로 해놓았어야지.ㅎㅎ"
"쌤,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
그 아이의 말과 말투 그리고 표정에서 타인에 대한 미안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아이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나머지 나는 '으..으응' 하는 대답만 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학원에서 알바하던 20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난다. 중학생 아이게서 묘한 서늘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부도 잘했고, 잘 따르던 학생이었는데 뭔지 모를 대단한 착각을 한 것만 같았다.
성적 우수 = 모범생 = 좋은 인성? 뭐 그런.
그 일이 있은 후로 그동안의 언행을 돌려봤는데 놓치고 있던 것들이 그제야 느껴졌다. 나중에 원장의 말을 들어보니 대학은 꽤 잘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는 밀린 학원비를 떼먹고 잠수 탔다.)
그때 내 수업을 좋아했던 또 다른 학생이 있었다.
이 아이는 나중에 특목고에 갔고, 거기서도 톱에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내가 봐도 월등함이 느껴져 나중에 커서 뭐라도 정말 한자리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아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는 다른 아이의 팔을 샤프로 찍었다. 상대 아이가 성가시다는 이유였고, 학교에선 난리가 났다. 학교에 호출된 그 아이의 엄마는 면담을 마치고 피해 아이를 하교 시간까지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니가 얼마나 그랬으면 우리 애가 너를 샤프로 찍었겠니?"
너무 앞서 나가는 생각이겠지만, 내가 xxx을 키우는 건 아닌지 정말 고민이 될 정도였다. (그때는 정말 고민이 많았다.) 내가 가르쳐 주는 것을 쭉쭉 흡수해서 100점, 1등급으로 척척 바꿔오니 더 그랬다.
요즘 세상이 시끄럽다.
각자 이익집단화 되어 갈라지고 있다. 사회에서 자기들이 담당하는 역할은 어느새 무기가 되었다.
어떤 집단은 기업의 제무재표를 할퀴는 파업을 하지만, 어떤 집단은 국민의 생존을, 또 어떤 집단은 국민의 안위를 좌우하는 권력을 쥐게 되었다. 가만 보면 공부 기술은 권력에 가깝다. 그래서 그걸 미리부터 알고 공부를 열심히들 하셨나 싶다.
공부 잘했던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들은 소수만으로도 약간의 입장 전환으로도 세상에 더 치명적인 건 사실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다 보면 어쩜 사람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중에게 내 말이 맞는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내 상대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비난과 험담이 대중을 내편으로 만드는데 훨씬 더 잘 먹힌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
낚시에서 대상어종의 변하지 않는 습성을 이용하듯, 대중의 습성은 시대가 바뀌어도 똑똑하신 분들의 여전한 사냥 기술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싸게 먹히는) 거친 말은 기본 소양이며. 기가 막힌 워딩과 뻔뻔한 표정 스킬은 필수 덕목이다.
사과보다 유감으로 자존감을 지킨다.
잘못의 인정보다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그들이 택하는 실리다. 그게 세상의 이치라면서.
사람 수명이 천년만년이라면 누적된 학습효과라도 있겠지만, 어디 그런가? 또 당하고 또 저지르는 거지.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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