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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닝레인 Apr 27. 2023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

- 서재인 옮김, 엘리


# 서문 : 유령이 출몰하는 현재로부터 


"그런 사람들에게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이 의미하는 바는 알고 보니 그저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유대인이란 기독교도도, 이슬람교도도, 다른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여타의 어떤 정체성도 아닌 상태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밝히는 사람보다 제다이라고 밝히는 사람이 더 많다), 소외되고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상태, 혹은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들자면 죽은 상태를 뜻했다.


... 죽은 유대인은 모든 유대인 가운데 최고였다.
... 유대인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한 대중의 엄청난 관심이 살아 있는 유대인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착각했었다. 내가 완전히 틀렸다.

...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그토록 신경 쓰는 게 무슨 소용인가요? 당시 나는 죽은 유대인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깊은지, 그 집착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명료하게 표현하지 않은 채 문명과 자기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관념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 내 가족의 정체성이 타인들의 견해와 투사에 의해 정의되고 결정되는 이 유령의 집 같은 세게를 피하고 거부하는 대신, 나는 그 왜곡된 대중의 거울 위로 직접 몸을 기울여 거기서 내가 찾아낼 것을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죽은 유대인에 대한 대중의 집착이 겉으로는 가장 상냥하고 시민 정신이 투철해 보이는 형태를 띠고 있을 때조차 인간 존엄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수많은 방식을 풀어내고, 기록하고, 묘사하고, 똑똑히 말할 것이다."


# 1장 : 모두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죽은 유대인


"안네 프랑크가 살아남았더라면 그는 자신을 배신한 네덜란드인들에게, 유대인 한 명을 고발할 때마다 보상으로 약 1.4달러씩을 받았던, 여전히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그들에게 결국에는 다소 화가 나 있었을 것이다. 


... 안네가 죽은 뒤 거둔 성공에 관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가 정말로 경험한 것을 영원히 은폐한 채로 남겨놓는다. 사실인즉, 우리는 그가 살아남았더라면 했을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 엘리 위젤는 자신의 직품 <나이트>를 본래 '그리고 세상은 침묵했다'라는 제목으로 이디시어판으로 출간했다. 젊은 생존자의 분노를 신학적 고뇌로 전환한 작품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속한 사회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자신에게 죄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떤 독자가 듣고 싶어하겠는가? 신을 비난하는 것이 낫다. 안네처럼 되려면 위젤은 많은 것을, 휠씬 더 많은 것을 은폐해야 했을 것이다. 

이 참혹한 경험을 은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작가에게 무엇을 의미하게 될까. 신비스러운 일은 전혀 생기지 않고 오직 무관심만 돌아올 뿐이다."


* 유대인 연대기 작가인 잘만 그라도프스키의 작품도 감금된 상태에 쓰였고, 그가 죽은 뒤에야 발견되었다. 유일한 차이점은 그라도프스키의 작품은 아우슈비츠에서 쓰였다는 것이다. 


... 그의 목적은 진실이었고, 불길에 휩싸인 세상을 애통해하는 예레미야에게서 나온 것처럼 타는 듯 눈부신 예언이었다. 

"지금 내가 쓰는 이 문장들이 내가 살았던 삶의 유일한 목격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 그라도프스키의 연대기는 1944년 3월 8일 밤 한꺼번에 대규모 '수송'되어 학살당한 체코계 유대인 5000명의 충격적인 살해 현장 속으로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이끌고 간다. 

... 그라도프스키는 한 여자, "사랑하러운 금발의 젊은 여자"가 죽음의 행진 도중에 발을 멈추고 장교에게 말을 걸었던 일을 회상한다. "이 진절머리 나는 살인자들아! 짐승같이 굶은 눈으로 쳐다보는구나. 나ㅐ가 좀 벗었더니 눈이 질리도록 쳐먹는구나. 그래, 이게 너희가 기다려온 거겠지. 민간인으로 살면서는 꿈도 꿔보지 못한 거잖아. (..) 근데 너희가 이런 거 즐길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게임은 거의 끝났고, 아무리 너희라도 유대인 전체를 죽일 수 없어. 그리고 너희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그러더니 여자는 갑자기 그들에게 달려들어 화장장 책임자였던 보스라는 이름의 분대장을 세 번 연달아 후려쳤다. 곤봉 여러 개가 여자의 머리와 어깨를 내리쳤다. 여자는 상처로 뒤덮인 머리를 하고 벙커로 들어갔다 (...) 기쁨으로 웃음을 터뜨린 여자는 차분히 죽음을 향해 나아갔다.


>>>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이 진실을 은폐하지 않고 들을 용기가, 불길을 직면하고 다시 시작할 용기가 바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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