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속에서 나를 상실했다면 이별 속에서 나를 찾는 방법이 있을까?
그와의 이별이 찾아왔다.
이별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누군가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나의 시간을 투자하고, 나 자신을 상대에게 주었다면, 놓아주기란 정말 어렵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별에 있어서 감성을 배제하고 이성을 지키라고. 하지만 이것은 이별에 대해 잠시 시선을 돌리는 일회성 해결책일 뿐이다. 결국 내 감정을 부정하면 그 부정은 다른 문제로 나에게 돌아온다.
고통과 혼란 속에서 우리의 이별은 시작된다. 우리.. 우리라는 말도 이별이 오는 순간 너와 나로 분리가 되어버린다. 나의 감정 또한 만감이 교차한다. 이 관계에서 내가 바랐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나의 실망감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관련이 있을까? 꼬리의 꼬리를 물고 물음표를 던저본다.
이별이 찾아와 공허함, 분노, 슬픔, 후회, 자유 그 이상의 모든 감정을 느끼게 된다.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느꼈다면 이제 정신을 차린다. 이 상황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별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가치를 잃는 게 아니라 얻는다고?
나의 가치를 믿는다.
이별을 하면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가치는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느냐와는 무관하다. 내 정체성을 연애 관계에 연동을 시킨다면, 그 사람이 사라졌을 때 공백이 크다. 그 공백은 나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나를 괴롭혔다. 어린아이의 소꿉놀이처럼 딸 이름과 아들 이름까지 지으며 오순도순 연애했고, 사랑한다 말하고 안아달라 표현했다. 누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도 했는가. 정말 과학적으로 증명된 말이 맞는듯하다. 죽을 둥 살 둥 힘들었던 과거는 잊은 채 기억은 미화가 돼버린다. 내 정체성을 연애 관계에 연동시킨 대가인 것이다.
다시 혼자가 되었으니 이번 기회에 나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평생 내 삶에 함께 했으면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생산적인 시간을 갖는다. 이것이 나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이다. 나의 가치를 디자인하자.
다시 연애를 할까?
과거의 고통이 치유되지 않으면 더없이 좋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성급하게 앞사람을 잊기 위해, 혹은 복수하는 심정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니더라. 오직 상처와 후회를 더 크게 만들고, 바이러스처럼 고통을 퍼뜨릴 뿐이다. 다시 데이트를 하기 전에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과거에는 그렇게 하기 싫어했던 운동을 해보고, 책도 읽어본다. 현재 나는 운동과 독서로 자존감을 세우고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내가 운동을 좋아하고 책을 읽다니.. 청소년기에 했으면 부모님이 기뻐하셔서 용돈을 두배로 주셨을 것이다.
그 이외에도 내 성장에 투자해보자. 관계 속에서 나를 상실했다면 이별을 통해 나를 찾는 것이 내가 이별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지금 관계를 맺고 있든, 아직 새로운 관계가 들어가기 전이든,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나 자신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해본다. 그런 다음에서야 자각과 사랑을 가지고 연애의 세계에 뛰어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