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만남은 당구공 같은 만남이다.
한 사람이 사람이 되는 과정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고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난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엇비슷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더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그 이유가 제각각이다.
공동체에 파묻혀 살아가는 일개 인간일 뿐이지만, 본래 인간이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나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하면서 내가 무슨 사람인지 알아갈 때 정해진다. 사람다움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나거나 노력을 통해서 획득해야 되는 본질일까? 오히려 사람다움은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인정해줌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내가 아무리 사람다워지려고 노력을 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사람답게 살 수 없다.
스치면 인연이지만 스미면 연인이 된다. 스치는 만남은 당구공 같은 만남이다. 몸의 일부가 당구공처럼 순간적으로 부딪쳤다가 순식간에 떨어지는 만남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 지나간다. 스미는 만남은 짧은 만남이어도 깊은 인상에 남는다. 그가 던진 한두 마디가 심장에 박히고, 그가 보여준 짧은 미소가 오랫동안 긴 여운을 남긴다.
사랑은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스며든다. 그래서 스며든 무게만큼 사랑도 깊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가 그로 인해 기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주는 기쁨 덕분에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기쁨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이 식으면 사물처럼 같은 방에 존재해도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랑이 딱딱한 사물이 되면 서로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뿐이다. 관심이 무관심으로 전략하고, 눈치가 있음에도 눈치가 없는 척을 하며 사랑이 메말라간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든 누눈가가 나를 사랑하든 사랑은 관계 사이로 흐르는 윤활유 같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사랑이란 그리 어렵지 않다 생각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닌가 보다. 나는 언제쯤 온전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소중한 여인이라 표현할 때
행복한 여자임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