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에서의 주된 일과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거나 젖병을 이용해 분유 수유를 한 뒤 방으로 돌아와 유축을 하는 것이다. 낮 시간뿐만 아니라 새벽에도 유축은 계속된다.
나의 경우에는 젖량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라 모유수유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터라 젖을 많이 물리던지 유축을 많이 하던지 해서 계속 젖이 생산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했다. (젖을 돌게 하는 호르몬인 '프로락틴'은 양성 되먹임 기전을 통해서 방출되는 호르몬으로 젖이 많이 돌면 돌수록 더 많은 호르몬이 나와 젖량이 늘게 된다.)
당시 유준이는 태어난 지 갓 일주일을 넘은 상황이라 젖을 잘 물지 못했고, 젖량을 늘리기 위한 나의 선택지는 '유축' 한 가지뿐이었다. 조리원 생활 2주간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유축을 했다. 밤낮으로 이어지는 유축을 통해 나는 모유를 얻었지만 손목을 잃었다. 산모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 한 가지. 모유 유축할 때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갈 텐데, 힘 빼고 유축하길 바란다.
사실 젖량이 많은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모유수유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치밀 유방'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여성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종류인데, 유방 조직 중 지방의 양이 적고 유즙을 만들어 내는 유선 조직의 양이 많은 것이다. 치밀유방일 경우 유선 조직이 많다 보니 모유량도 따라서 많아지게 된다.
모유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아기가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인데, 부족한 것보다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아기가 그 양을 다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기가 다 못 먹는데 그게 어때서?'라고 물음이 생길 수 있다.
*수유량
몸무게 X 170 = 하루 총 수유량
*1회 수유량
하루 총 수유량 / 8 = 1회 수유량
예) 4kg 아기의 하루 총수유량은 4kg X 170cc = 680cc
따라서 4kg 아기의 1회 수유량은 680cc / 8 = 85cc
분유 수유를 할 때는 아기들이 얼마나 먹게 되는지 젖병 눈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유수유를 할 때는 도통 아기들이 얼마나 먹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먹인 지 얼마 안 됐는데 아기가 울면, 이게 배가 고파서 우는 건지 다른 불편한 점이 있어서 우는 건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모유수유는 분유 수유와는 다르게 아기에게 선택권을 준다. 젖을 먹다가 아기가 먹기 싫으면 입을 떼는데 그럼 수유가 끝난다. 아주 간단하다. 하지만 아직 엄마의 가슴에 젖이 많이 남아있는데 아기가 입을 뗀다? 그럼 문제가 생긴다.
젖량이 아기와 잘 맞춰진 상태에서는 아기도 배부르게 먹고 엄마 가슴도 시원하게 비워져서 아기도 행복하고 엄마도 행복하다. 하지만 수유가 끝났는데도 가슴에 젖이 남게 되면 유관마다 젖이 고이게 되고 트러블이 생기게 된다.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해지고 통증이 생기는데, 심해질 경우 온몸에 열이 나고 몸살이 온다. 이것을 '젖몸살'이라고 한다. 이런 젖몸살이 반복이 되다 보면 모유의 질도 안 좋아지고 쓴맛이 날 수 있다. 그리고 엄마는 해열진통제와 항생제를 복용하게 된다.
이러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나야만 모유수유가 편해진다. 우리 아기가 잘 먹었는지 감으로도 알 수 있게 된다. 아기가 충분하게 먹고 나면 엄마의 가슴은 날아갈 듯이 가볍고 편하다. 조금 더 정확하게는 수유 시간으로도 알 수 있다. 모유수유를 할 때 스톱워치를 이용해서 몇 분 동안 먹었는지 시간을 재게 되는데, 모유가 익숙한 아기들은 좌우 5분씩, 10분 컷으로 수유를 마친다.
조리원에서 하나씩 배워가고 있는 중인 새내기 엄마인 나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 유축을 하고 나면 지정 냉장고에 모유를 보관하게 된다. 젖병마다 아기의 태명이 붙어있어 누구의 모유인지를 구분하게 되는데, 냉장고를 열어 내 모유를 넣을 때마다 다른 엄마들의 모유를 보게 된다. '다들 얼마나 유축했지? 색깔은 어떻지?'라고 생각하며 내 모유와 비교를 한다. 조금 많이 나온 날은 다른 젖병이랑 비교해서 어깨가 으쓱하기도 하고 적게 나온 날은 기가 죽는다. 물론 이 모든 생각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하지만 다른 엄마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조리원에서 초반에 유축했던 모유. 양도 적고 색도 아직 초유색으로 노랗다. 조리원 생활 후반부에 유축했던 모유.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조금 늘었고 색도 뽀얗게 변했다.
나는 모유량도 많지 않았을뿐더러 색상이 그렇게 하얗지 않았는데, 냉장고에는 마치 우유를 넣은 것처럼 뽀얗고 양도 max 160mL를 가득 채운 젖병도 있었다. 모유 냉장고를 열 때마다 그 엄마의 젖병을 보게 되었는데 젖병의 주인은 '쑥쑥이'의 엄마였다.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지는 쑥쑥이의 젖병을 보면 '쑥쑥이는 좋겠다. 엄마가 모유량이 많아서'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조동(조리원 동기) 언니 중 한 명은 젖량이 너무 많아서 조리원 생활 당시 모유를 얼려서 따로 보관했었다고 했다.
나도 사람이기에 누구는 얼려서 보관할 정도로 모유량이 넘치는데 내 모유량은 반에도 못 미치는 걸 보고 있자니 냉장고를 열 때마다 비교를 하게 되고, '집에 돌아가서 모유수유를 할 수 있을까?'하고 불안해했었다. 초보 엄마의 걱정이었다.
낮에도 그리고 새벽에도 쉬지 않고 유축을 했었는데, 조리원 모유 냉장고 속에는 항상 모유가 든 젖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엄마들이 아기들을 위해 새벽에도 조리원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모유를 날랐다. 나를 포함한 조리원의 모든 엄마들이 쉴 틈 없이 바빴다. 모유는 단순히 아기들이 먹는 것이 아니라 아기들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