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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디언 Jun 20. 2024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New York방문기

우정에 관한 유명한 고사성어들 중에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는 글이 있다. 

이 뜻은 ‘ 벗이 멀리서 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이다.

얼마 전 40년 지기 친구를 만나러 뉴욕( New York)을 다녀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이 친구는 여학교 내내 함께 다녔고, 대학 때는 민주화 운동을 함께하며,  결혼도 같은 시기에 그리고 아이 출산도 같은 시기에 했었다.

그 후로 우린 헤어져 20여 년 동안 대륙을 다르게 살다가 얼마 전 연락이 닿아 다시 연결되어 이번에 만나게 되었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 로비에서 20여 년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중년의 나이에 만난 우리는 금세 서로를 알아보았다.


완벽한  H라인의 몸매에 머리에는 어느덧 소금과 후추가 뿌려진 듯 희긋희긋한 백발이 보이고, 웃음 짓는 눈가에는 삶의 깊이만큼 페인 주름이 연하게 보였다.

야간 Time Square 


직장에 하루 휴가를 내고 나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만들어서 한 걸음에 달려 나온 나의 친구가 있다는 것이 이리도 고마울 줄이야. 

덩달아 엄마 친구가 왔다고, 우리의 하루 여행가이드가 되어 주겠다고 귀중한 오프데이(Off Day)를 우리에게 할애한 딸도 대동해 왔다.

뉴욕 타임스퀘어 지하철 역에서 첫 사진 촬영을 시작으로 우린 여행지에서 흔히 보는 여행 인증사진을 곳곳에서 찍었다. 

자신도 15년 뉴욕살이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자유의 여신상을 투어 하는 유람선 티켓을 우리를 위해 샀단다. 그것도 프리미엄으로 말이다.


프리이엄 좌석에서 본 자유의 여신상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퍼즐 맞추기를 하듯이 우린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시간을 왔다가 갔다 하며 서로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하느라 사실 자유의 여신상은 그저 우리의 백그라운드 (Background) 정도였다.

내 생애 처음 뉴욕이란 도시를 왔는데 내겐 도시의 위상보다는 나의 친구와 우리의 우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친구는 나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많이도 찾아본 듯하다.

2시간 정도의 유람선 투어를 끝내고 한참을 걸어서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라는 곳을 갔다. 


허드슨 강 위에 지어진 인공섬: 리틀 아일랜드

허드슨 강이 내려다 보이는 조경이 잘 조성되어 있는 최근에 지어진 곳이라 했다.

우린 과거의 여고생들처럼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한 참 말이 많을 나이인가?  여자들이란 언제 말아 없었겠는가 말이다.

초여름 6월의 날씨는 살짝 덥다 싶었지만, 강바람이 시원했고,  날씨는 그지없이 맑았다.


다음 여행지는 첼시 마켓( Chelsea Market) 우린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나는 이곳에는 유명하다는 랍스터 롤을 먹어야 한다고 소셜미디어에 나왔다 하여 많은 사람들로 이미 붐비고 있었다.

첼시마켓에서 후식으로 먹은 젤라토, 꼭 억어야 한다는 랍스타롤과 햄버거, 첼시마켓 내부 관광객들로 만원



그래 여행은 이런 맛이지.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자리 찾기 위한 눈치 싸움이 여간 아니었다.

점심 인증사진을 찍고 허겁지겁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빠르게 음식을 흡입했다.

배가 고프긴 했나 보다.

식곤증으로 졸음이 오고 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또 한 참을 걸어 이번엔 옛 철도를 리모델링해서 공원으로 꾸며 놓은 하이라인 ( High Line)를 갔다.

그다음은 아름다운 뉴욕 허드슨 강을 배경으로 석양을 보기 위해 베슬타워(Vessel)가 있는 곳으로 가고 석양이 기울어져 갈 무렵  에지( Edge)라는 곳에 올라가 뉴욕의 야경을 보았다.




저녁을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루프탑에서 음료수 한 잔씩 먹고 아쉬운 석별을 나누었다.

 20여 년이라는 공백을 하나도 느낄 수 없는 우리의 만남. 

낯섦 없이 그저 어제 만났던 것 같았던 친밀함이 더 놀랍기만 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그녀가 사는 거리가 비행기로 불과 50여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기쁜 충격이었다.

늘 멀게만 느껴져 왔던 거리가 실제와 보니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이 우리의 관계를 더 가깝게 느껴지게 했다.



호텔 루프탑에서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며, 허드슨 강의 석양, 뉴욕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엣쥐


나를 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내 이름 그대로를 불러줄 수 있는 존재, 그리고 나의 유년과 청소년과 젊음을 다시 소환해 낼 수 있는 존재- 친구, 벗.

아름다운 우정을 노래한 유안진 교수님의 지란지교(芝蘭之交)라는 시(詩)가  지금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 나라에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은 또 어떠한가!

우리나라 명종 시대에 오성과 한음은 …

모든 좋은 우정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인 듯 마음이 너무 푸근하다.

단 하루였지만, 20년의 시간이 꽉 차인 느낌이 든다.


두 모녀와 헤어지고 난 후에도, 그리고 며칠 후 집에 돌아온 후에도, 사진첩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그날의 기억은 감명 깊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그 감동과 잔영이 오래도록 남는 것처럼 내게 그렇게 남아있다.



선물로 준 생강차를 마실 때마다, 당 떨어지는 오후에 한 입베어 먹는 쵸코렛 쿠키를 먹을 때마다, 매일 아침 달걀과 아보카도 위에 에브리띵 베이글 가루를  얹어 먹을 때 나는 친구의 사랑을 먹고 마시는 것 같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갔던 첼시마켓에서 찍었던 사진을 들여다보면 비릿한 바다내음이 나는 것 같으며, 함께 탄성을 지르며 감격했던 뉴욕의 야경과 함께 모든 오감이 그날의 것을 고스란히 기억해 낸다. 

무엇 보다도 친구와 딸이 보여준 사랑으로 나는 배부르다. 


‘그의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

[출처]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 


무엇보다도 나의 친구가 이런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뉴욕의 야경은 크리스마스 츄리를 장식한 크리스마스 전구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뉴욕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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