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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연금술사 Oct 01. 2022

승무원의 직업병

“으아아아~~ 아이구 삭신아...”


마지막 손님 한 분까지 비행기에서 내리신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간 꼿꼿하게 유지하던 자세를 풀며 한껏 기지개를 켜본다.


비행이 끝나서 마음은 가볍지만, 몸은 천근만근이다.

어깨에는 새끼 곰 두어 마리가 올라앉아있는 것 같고, 양쪽 다리는 족쇄가 달린 것 마냥 무겁다.

아까부터 허리랑 손목도 시큰거리는 것이 영 심상치 않다.


부종, 허리 및 손목 통증, 근육통...

그렇다. 이것은 전형적인 승무원의 직업병이다.


그 외에도 소화불량, 온갖 바이러스성 질병, 피부질환, 불면증 등을 나열할 수 있는데, 오늘은 승무원의 직업병에 관해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근육통 및 허리 및 손목 통증.

승무원의 육체적 노동 강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손님들과 대면하는 보딩과 기내 서비스 때를 제외하고도, 비행 전과 비행 후의 듀티들도 있기 때문에 할 일들도 많고, 생각보다 긴 시간을 기내에서 보내게 됨으로 엄청난 체력이 요구된다.


이코노미의 경우, 음료수와 주스가 든 무거운 서랍들을 수도 없이 옮겨야 하고, 프리미엄의 경우, 서비스 트레이 위에 올라가는 많은 아이템들과 서빙되는 음식용 도자기의 무게로 인해 손목에 무리가 온다. 계속되는 서비스로 인해 무거운 물건을 반복해서 들게 되고, 이로 인해 허리 및 손목 통증이 악화되어 만성 통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보딩 중 많이 다치는데, 오버헤드빈(기내 수화물 함) 안에 가방들을 정리하다가 혹은 무거운 가방 드는 것을 돕다가 허리를 삐끗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만석인 비행의 경우, 슈퍼바이저들은 크루들에게 절대 가방을 혼자 들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만석 비행에 오버헤드빈의 빈 곳을 찾아 헤매는 손님들을 보면, 급해지는 마음에 혼자서 가방을 이리저리 옮기게 되고, 본의 아니게 허리를 다치게 된다. (그게 나였다.)


부종 또한 달고 사는 직업병 중 하나인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두 눈으로 명확히 보일 정도로 다리가 붓는다. 몸이 정말 많은 부은 날에는, 발에 딱 맞던 유니폼 구두를 신데렐라 유리구두 뺏어 신는 새언니 마냥 우격다짐으로 욱여넣어 신어야 할 정도로 붓기도 한다.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매 비행마다 다리는 붓는 것 같다.


소화불량 및 위 관련 질환도 빼놓을 수 없다. ‘밥을 먹는다’보다는 ‘끼니를 때운다’가 맞는 표현일 정도로 승무원의 식사시간은 짧다. 서비스 중에는 손님들의 식사를 챙기느라고 정신이 없고, 서비스 외에도 할 일들이 많기 때문에 이것저것 하다 보면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 없다. 게다가 아침 비행, 낮 비행, 밤 비행 이것저것 뒤섞이는 스케줄로 인해 식사시간이 매우 불규칙하다. 식사를 하고 바로 잠을 청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일어나자마자 바로 밥을 먹고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불규칙한 식사시간에 가장 고통받는 것은 바로 ‘위’ 일 테니, 많은 승무원들이 소화불량, 역류성 식도염, 만성위염에 시달린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 외에도 건조한 기내에서 풀 메이크업을 한 채로 계속 일을 하기 때문에 피부가 점점 건조해지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 불규칙한 생활, 시차로 인한 불면증, 계속되는 비행 강행군 뒤에 누적되는 피로로 인해 피부가 뒤집어지는 일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스트레스와 면역력 저하도 한몫하는데, 나도 1년 이상을 피부 알레르기 증세로 엄청 고생했다.


또한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일하다 보니, 환절기 감기, 코로나, 피부병, 온갖 바이러스성 질병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몇 달 전에는 코로나 위험 국가 - 원숭이 두창 확산 국가 – 말라리아 발생지역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비행 스케줄을 받은 적도 있었다. 감사하게 아무 일도 없이 전부 다 잘 다녀왔지만 비행 전에 좀 걱정이 되기는 하더라.


승무원의 직업병은 무수히 많다. 현재 이 글에서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하지 정맥류, 방광염, 중이염, 안구건조증, 불면증, 탈모 등등등... 정말 다양한 종류의 직업병이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고생을 하면서까지 승무원을 하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직업병이 없는 직업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말이다. 내 직업은 직업의 특성상 신체적인 부분으로 많이 나타나는 것이고, 그리고 이건 내가 노력하기 여하에 따라 충분히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므로, 외려 자기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운동하기, 식습관 조절하기, 피부 관리하기, 영양제 잘 챙겨 먹기, 충분한 수면 취하기, 오프 때라도 규칙적인 생활습관 갖기. 이런 것들은 지금이라도 조금씩 개선해서 좋은 습관을 몸에 새겨두면 평생 도움이 되는 것들이기, 젊은 나이에 조금 호되게 배운다.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물론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이것 또한 마음의 수련이다 하고 넘기면 조금은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더라. 아령의 무게를 조금씩 조금씩 늘려 가면서 몸의 근육을 키우듯이, 스트레스도 일종의 마음의 아령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위의 언급되었던 직업병의 상당 부분은 나도 고생을 했거나 지금도 겪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해결해 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자주 붓는 다리를 위해 구매해 본 지압 슬리퍼가 엄청난 효과가 있을 때! 나는 유레카! 를 외친다.

그래서 두 켤레나 사서 도하에 한 켤레 두고, 레이오버 가방에 한 켤레 넣어서 다닌다.

새롭게 따라 해 본 스트레칭 영상에 온몸이 시원하게 풀어질 때!!! 복권에라도 당첨된 기분이다.

전날 피부관리로 다음날 피부가 촉촉할 때!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이렇게 저렇게 나만의 방법을 찾아가면서 어제보다 나아짐에 기뻐하고, 소소한 것에 행복해 하면서 사는 게 직업병을 극복하는 기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룰루랄라 방 안에서 지압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면서 비행 가방 안에  

온갖 영양제와 스킨케어 제품들을 한 보따리 챙겨 넣는다.


자! 내일은 어디로 떠나볼까나???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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