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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Feb 20. 2022

나는 너에게 말해주겠다.

이상한 것은 네가 아니다


너 지금 무슨 생각해, 물으면 답할 말이 있어? 네 머릿속에서 가열차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가. 버려지기 위해 선택받는 불량품들의 처지가. 시체처럼 가만 누워 물재들을 솎아내는ㅡ 다만 살아있는 기다랗고 하얀 손가락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 너 지금 무슨 생각해. 그 말에 어떤 표정을 지을 거야? 너의 기다랗고 하얀, 실은 그런 것은 없어, 오로지 두껍고 텁텁한 손바닥만이. 너는 습관처럼 다섯 개의 아성을 펼쳐내지. 그것으로 네 머리를 내려치지. 고요한 적막만이 도사리는 공장에 자학의 신호탄이 울린다. 둥둥, 적군의 포로들이 몰려온다. 아군인지도 모르고 총질하는 멍청한 동료들을 보라지. 여기에 네 탓은 아무것도 없는데. 너는 왜 그런 표정을 짓는데. 


네 탓을 하는 건 옛날부터 쉬웠지. 날 때부터 타고난 너의 재능이지. 빛나는 재능이지. 네가 태어나는 날 이 행성도 새롭게 단장을 하였고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무너지고 그리하여 도래한 새 시대, 새 소년, 새 로운, 그 어떠한 모든 것들. 너 태어나는 날 그런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니 그것도 역시 재능이다. 재능이라 말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 없다.


이상한 것은 네가 아니다. 제정신인 채로 살아가려는 것은 생의 일환, 그로 인해 아주 조금 불행하고 더 많이 절망한데도,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적힌 서목에 네 이름 석자가 처참히 박힌대도. 나는 너에게 말해주겠다. 이상한 것은 네가 아니다.


그러니 이제부턴 다시 생각해. 절벽 끝 폭포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무전을 쳐. 외딴섬 한가운데 철저히 혼자가 되어 구조 신호를 보내. 산 채로 묻힌 무덤 속을 헤집고 파헤쳐 일어나. 세상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고, 두껍고 텁텁한 손가락으로, 그 손가락으로, 선고를 내리자. 시대의 희생자를 호명하는 거야. 그래도 너에겐 죄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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