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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파란 Feb 25. 2022

폴란드 결혼식 하기 :1.한 쌍의 커플, 세 번의 결혼

한 번도 무서운데 세 번을 해야 합니까? 참 부담되네요.

깜짝 청혼(?)이 포함된 노르웨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공식적인 약혼한 커플로서 친구들 앞에 다시 소개되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 감사하게도 너무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가장 기뻐하신 분은 남자 친구 부모님이었고, 우리 부모님은 시차 때문에 다소 소식을 늦게 들었지만 그래도 축하한다고 말해주셨다. 그리고 이 모든 사람들이 하는 다음 질문은 모두 똑같았다.


"결혼식은 어디서 할 거니? 한국? 폴란드?"


나는 2013년 9월에 폴란드에 왔다.

유학 과정을 거쳐서 현재는 직장 생활 중이며 내 20대의 대부분을 폴란드에서 보냈다. 가족은 한국에 있지만 대부분의 지인들은 폴란드 혹은 한국 외의 어딘가에 있다.  


많은 국제 커플 혹은 해외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고민하겠지만, 나는 결혼식을 해야 한다면 두 나라 다, 아니면 폴란드에서만 하겠다고 결심한 지 오래였다. 한국 정서상 부모님이 원하신다면 한국 결혼식은 하겠지만, 그건 가족을 위한 결혼식이지 나를 위한 결혼식은 아니니까.


이런 내 의견을 말씀드리니 남자 친구 부모님은 다음 질문을 하셨다.


"베셀 레(Wesele)는 할 거지? 혼인 미사(ślub kościelny)는? "


폴란드에서 결혼식은  차례, 혹은  차례로 나누어져서 진행된다. 하나는 시청이나 가톨릭 교회에서 혼인서약을 하는 실룹(ślub)이고 혼인서약 이후 늦은 ~ 다음  아침까지 이루어지는 피로연인 베셀 (Wesele), 그리고 아침까지 놀던 사람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와 오후부터 늦은 저녁까지 노는 뒤풀이 파티인 포프라비나(Poprawina). 최근에는 Poprawina 일정 때문에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 결혼식에 비하면 참 긴 결혼식이다 싶지만, 전통적인 폴란드 결혼잔치는 장장 1주일이 걸리는 잔치였다니, 말 그대로 가족과 이웃 전체의 행사가 아닐 수가 없다.


결혼식의 꽃, 당연히 Wesele!


아침 5시까지 광란의 파티(?)를 벌인 생존자들. 신랑 신부가 그만 자러 가라고 쫓아냈다.....

이전에 남자 친구와 하객으로 참석해 본 몇 번의 결혼식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중 결혼식의 꽃은 단연 베셀 레(Wesele) 피로연이다. 하객들은 단순 앉아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식사 중간중간 춤을 추고, DJ 혹은 밴드가 초청되어 밤새도록 음악을 연주하며, 다양한 게임까지 진행하며 파티를 벌인다. 신랑 신부는 멀리서 온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게 밤새도록 먹을 술과 음식을 준비하고, 교통편이나 손님들이 묵을 호텔을 준비한다.


폴란드인이라는 민족, 정말 잘 노는 민족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정말 다들 흥겹게 춤을 추고 정말 잘 논다. 술은 또 얼마나 잘 마시는지... 내가 가 본 베셀 레마다 적어도 하객 1인당 1병의 보드카가 나왔다. 결혼식 술이 떨어지게 되면 그건 혼주 측의 수치가 되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술을 준비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스케일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꺼려하여, 결혼을 했으나 피로연은 뒤로 미루며 돈을 모으거나, 아예 피로연을 하지 않으려는 커플들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작년 10월에 갔던 결혼식은 시청 결혼식(ślub) 이후 피로연을 하려고 날짜를 잡았으나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을 할 수가 없어서, 1년 넘게 피로연이 미루어지다가 열린 경우였다. 그들 사이에는 그새 사랑의 결실인 첫 아이가 태어나 있었고, 결혼식은 혼인 미사 - 아이의 세례식 - 피로연 순서로 진행되었다.


여하튼 예비 시부모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그때까지 결혼하겠다고 마음은 먹었으나(?) 결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계획이 없는 상태였다. 다만 다양한 결혼식을 다니다 보니 폴란드 피로연의 흥겨운 분위기가 나는 마음에 들었고, 남자 친구나 가족들도 가정 내 행사로서 결혼식을 무척 기대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피로연 파티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은 잘 모르겠지만 피로연을 하긴 해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어물어물 대답하자 남자 친구 어머니의 다음 질문은 이랬다.


"그럼 언제 할 건데?"

"22년 여름!"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답을 안다는 듯 남자 친구가 딱 잘라서 말했다. 그래? 22년 여름이구나.... 하고 잠시 생각하던 찰나, 어머니가 큰일 났다는 듯이 말하셨다.


"그래? 시간이 얼마 안 남았구나."


그때만 해도 2021년 10월이었으니, 2022년 7월이면 9개월이나 남았는데... 이 정도면 넉넉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2022년 2월의 나는 어머니 말씀이 옳았다고 느낀다. 대부분의 폴란드 커플들이 결혼을 준비하는 기간은 평균 1년 반에서 2년 정도라고 한다. 단순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결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신혼부부가 검토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후 결혼 날짜가 정해졌을 때도 주변 폴란드인들은 우리에게 결혼을 빨리 한다고 말했다. 직장동료나 주변 폴란드 친구들에게 알아보니, 나보다 먼저 프러포즈를 받았는데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내년 혹은 내후년 식장을 잡은 친구들이 많았다.


"빨리 식장부터 알아봐야겠어, 크리스마스 전엔 식장 예약을 해야 여름에 맞출 수 있어."


그렇게,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하다 보면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되겠지 뭐... 하는 마음으로 허겁지겁 결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가톨릭 국가에서의 교회 결혼식은 필수일까 아닐까?

폴란드는 유럽에서도 가톨릭 신자 비율이 아주 높은 국가다. 이 나라 대부분의 관혼상제는 가톨릭 문화와 깊게 연결되어 있고, 많은 가족 내 이벤트가 종교적 관습에 기반되어 행해진다. 아무리 유럽에서 기독교가 힘을 잃어 가고 있고, 폴란드도 그 영향을 피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폴란드에는 신앙이 깊은 신자들이 많다.


폴란드에서는 시청 결혼식만 하고 피로연을 하는 비신자들도 있지만, 아직은 그 비중이 적고 대부분이 뒤늦게라도 혼인 미사를 거치게 된다. 교회 내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혼인 미사는 법적인 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청 결혼식을 하지 않고도 서약서 만으로 혼인 신고가 가능하다.


나는 남자 친구와 남자 친구 어머니에게 의견을 물었다.


"저희가 교회 예식을 올리길 바라세요?"


대답은 양쪽 다 탁탁, Yes 였다. 남자 친구 부모님께서는 내가 다른 종교(개신교)라는 것을 존중하며, 개종을 강요할 마음은 없다고 했지만 폴란드 풍습이 대체적으로 결혼 미사 이후 피로연으로 이어지는 예식이다 보니 그런 전통적인 형태의 결혼식을 원한다고 했다.


사실, 폴란드에 살면서 몇 번인가 다른 사람의 결혼 미사에도 참석해보았고, 다른 기회로 성당에 가볼 일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그 미사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다소 부담스러웠다.


이유는 내가 성당에 갈 때마다 느꼈던 소외감 때문이었다. 나는 항상 신자가 아니니 어색 어색하게 그 자리에 서있는데 그 문화가 너무나도 익숙한 다른 사람들은 묻지 않아도 동일한 기도문을 외우고 노래하는 것이 유독 내 눈에는 생경해 보였고, 엉거주춤 남들 따라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빨리 끝나기만을 빌었다.


특정 종교를 비난하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단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남의 옷이나 다름없는 종교였는데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문화의 관습으로 인생에 중요한 서약인 혼인서약을 하는 게 맞는 걸까? 하는 고민이 들었을 뿐이다.


더군다나 한국의 지인들은 한국에선 같은 가톨릭 세례를 받은 신자가 아니면 가톨릭식 혼인 성사를 치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오직 '결혼을 위해' 종교를 바꿀 생각은 없다. 우리 커플은 각자 자신의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그 종교를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기로 연애 초반부터 합의한 바였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저는 가톨릭이 아니잖아요. 제가 결혼해도 괜찮은 건가요?"

"그럼,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더군다나 성당에서 결혼하면 아름답지 않겠니... "


그도 그런가? 하는 마음에 내 귀가 솔깃해졌다. 시청 결혼식은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없고 소수의 증인만 참석할 수 있다. 공무원을 시청이 아닌 다른 장소 (예를 들면 피로연장)으로 초청해서 결혼할 수도 있겠지만 날짜를 잡기가 어렵고 피로연장이 한국 결혼식장처럼 화려하진 않다 보니 장소적 제약이 있다.


하지만 잘 지어진 성당은 (비신자인 내 눈에는) 예쁘고... 사진도 잘 나오겠지?


"좋아요. 이 동네 제일 예쁜 성당이 어딘가요?"

"그래. 잘 생각했어! 우리 동네 성당 투어를 해볼까? 내가 아는 신부님이 있는데 신부님 상담도 받아보렴..."  


내가 단번에 Yes를 외치자 (예비) 시어머니가 너무나도 좋아하셨다...


첫 고부간 종교 갈등으로 이어질뻔한 이 주제는, '예쁘면 다 끝이야'라는 내 마인드 하나로 평화롭게 완료되었다. 뭐 어디서 하건 가톨릭의 하나님도 내가 믿는 하나님과 동일인인데, 진심으로 맹세하면 어유 그렇구나 하고 받아주시겠지 뭐.


이렇게 정리가 됐구나 싶었는데, 얼마 뒤 남자 친구가 내게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해왔다.


우리 시청 결혼식도 하고 싶어.


아니 어차피 교회에서 결혼할 건데 왜? 우리는 남들처럼 약혼과 결혼에 시간차가 큰 것도 아니고, 다른 커플들처럼 같이 사는 사실혼 관계도 아닌데(사실 나는 연애 중에 동거하자고 몇 번 이야기했다가 이 보수적인 남자에게 거절당한 전력이 있다...) 왜? 어차피 교회에서 결혼하면 그게 법적 효력을 가지는 결혼이라 했는데 뭘 귀찮게 결혼을 두 번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내가 못 미더운가?


혹시 내가 결혼하겠다 해놓고 도망갈까 봐 무섭냐고 이유를 캐물어 본 결과, 가장 큰 이유는 당시 대한민국 방역당국 정책이던 "백신 접종한 직계가족 자가격리 면제" 때문이었다. 남자 친구는 외국인은 무조건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한국인과 2년간 교제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한 번도 가지 못하고, 우리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나도 덩달아 남자 친구에게 의리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실은 휴가를 길게 내기 부담스러워서가 더 크다) 2019년 이후로 한국에 한 번도 가지 못한 차였다.


"얼른 시청 결혼식도 해서 혼인신고도 더 일찍 하고, 마음 편하게 한국에 가 보고 싶어."


내가 농담처럼 너는 한국에 가려고 나에게 프러포즈한 거냐고, 이 가련한 한국 여자를 이용해 먹는 못된 인간이라고 놀렸더니 맞다며 남자 친구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으이고 이 화상, 못 말린다.


"농담이고, 이제 청혼했으니까 빨리 공식적인 부부가 되고 싶어서 그래."


두 번째 이유가 진짜 이유라고 믿으며, 나는 시청 결혼식을 하는 것에도 동의했다.

저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2차 결혼식을 할 생각도 갖고 있었기 때문에, 2022년 상반기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했던 상황이었던 지라 그것도 고려한 바가 없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비)시어머니는 바로 기다리셨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잘됐구나. 내 사촌의 여자친구가 공무원인데 혼인 관련 업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우리는 피로연(Wesele), 교회 결혼식(ślub kościelny), 시청 결혼식(ślub cywilny)까지 총 3개의 결혼식을 준비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단 9개월, 적은 시간은 아니지만 결코 많은 시간도 아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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