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대리 Jan 18. 2023

[두뼘에세이] 생일 알람, 불행의 시작

생일에 주변인으로부터 값비싼 선물을 받으면 행복해 날아갈 것만 같다. 그 감정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 무리한 욕심을 부리면 그때부터 불행이 시작된다. 내년에도 기대해서 그만큼이 안 나온다면. “”내가 요즘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겼나, 얘가 왜 올해는 안 줬지? “하는 고민이 시작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전 국민이 쓰는 ‘생일이면 케이크모양이 뜨는’ 그 채팅 어플은 아주 앙큼하기 그지없다. 멋모를 땐 그저,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소중한 사람의 생일을 리마인드 해줘 고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나이가 들고나니 그게 아니었다.


생일인 친구

‘A’ (예전엔 친했는데 안 본 지 쫌 됐음, 그렇다고 안 친한 것도 아님) [선물하기]

‘B’ (친하다고 생각 안 했는데 올해 내 생일에 비싼 상품권 보냄) [선물하기]   

  

아 씨. 오늘은 생일이 두 명이나 뜬다. 우선 A. 싸운 것도 아니고, 여하튼 서로 바빠서 오랫동안 못 보긴 했지만 무시하기도 힘든 애매한 관계. 어떤 걸 줘야 할까 싶어 지난 선물함을 보니 올해 얘가 B아이스크림 기프티콘을 줬네. 이건 12,000원이니까 요즘 뜸해졌다는 걸 감안해서 S커피숍 아메리카노 한 잔에 케이크 쿠폰이면 되겠지? 그럼 얼추 10,000원. OK.

다음 B. 나는 얘가 당최 이해가 안 가는 게 올해 내 생일에 너무 비싼 상품권을 줬다. 벌이가 그렇게 좋지도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이걸 그냥 무시하면 날 얼마나 원망할까,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래도 똑같은 금액으로 주기엔 나도 여유가 없으니 이거보다 살짝 적은 8만 원짜리? 상품권은 안 파네. 대충 비슷한 금액으로 ‘아무거나 사서’ 보내야겠다.     



다른 올챙이들을 물리치고 수천만 대 일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갖고 태어난 특별한 날에, 구색 맞추기 식의 아무 선물이나 받고 있는 현실. 그 어플의 폐해가 여기서 드러난다. 생일인걸 몰랐으면 자연스레 넘어갈 일들을 굳이 신경 써야 하게 만드는 것. 심지어 왔다 갔다 했던 기록들도 다 적나라하게 남아있다. 여유가 넘치는 벌이가 아니라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A 같은 사람이 50명 있으면 연 50만 원이 깨진다. 적은 금액이라고 볼 수 있는가.


B도 마찬가지다, 좋은 선물은 감사하지만 어찌 됐건 크리티컬 한 지출이고, 선물 때문에 갑자기 친밀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대충 적당한 것으로 구색 맞추기 형태’로 오가는 상품권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진정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담긴 선물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안 준거보다야 낫겠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솔직히 말해 며칠만 지나도 잊어버릴 커피 쿠폰에 얼마나 큰 감동을 느끼는가.     


그래서 생일을 어플에서 지워버렸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받고만은  사는 사람이라 누군가가  주면 그만큼  줘야 한다는  어느 순간 부담이 됐다. 사람인지라,  국민이 쓰는 그 어플에 내 생일떡하니  텐데   같은 사람이  주면 서운할 수밖에 없다. 지우면?  받아도 그러려니 하게 되는 심리가 자연스레 생긴다. ”생일인  몰랐을 테니  받아도 괜찮아. “     


그럼에도 내 생일을 기억해 준다면, 당연히 그 사람에게 나는 두 배 이상의 보답을 베풀 마음이 있다.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 주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