姦. ‘간사할 간’. 중국 사람들은 ‘여자 셋이 모이면 흉흉한 음모를 꾸민다’는 뜻에서 저 한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여하튼 셋만 모였다 하면 최소 한 명은 머리채 잡힐 일이 생긴다는 의미리라. 여자만 그럴까? 단언컨대 절대. 네버.
여잔 그나마 접시로 끝나니 다행이다. 우린 힘도 세다. 평균 성인 남자라면, 접시를 넘어 주방을 다 뒤집어엎을 최소근육량을 갖고 있다. 둘만의 문제라면 그나마 편하다, 풀거나 세이-굿바이 하거나. 그룹은 다르다. 안에서도 엮여있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뚝뚝 끊어낼 문제도 아니다. 최소인원으로 구성된 그룹이라 해도 갈등과 상처는 피할 수 없다.
P : 오늘부터 연휴인데 모해? 오랜만에 한 잔 할까?
A : 나 어제 좀 많이 마셨더니 숙취가 심하네..
B : 난 내일 선약이 있어서... 다음에 보자!
P : 다들 바쁘구만, 나중에 날짜 잡아보자 ㅎㅎ
알고 보니 어제 A와 B가 만난 것이라면. P를 부르지 않은 이유가 A와 B 단 둘이 만나서만 하고픈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면. 뒤늦게라도 말하지 않은 이유가 그가 상처받을 것을 걱정한 두 사람 나름의 배려였다면. 경험상, 소규모그룹은 ‘한 사람이 무척 싫어 왕따 시키며 번지는 싸움보다는, 우정의 순위에서 하위로 밀려나는 것에 대한 서운함’으로 갈등이 발생한다. 마음의 배분은 칼로 자르듯 균등할 수 없다. 특히나 어려운 비밀을 털어놓고 싶은 순간이라든가, 하여간 ‘한 사람’에게만 뭔가 말하고 싶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음속 순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단체전에선 쟤가 날 8등으로 생각하든, 9등으로 생각하든 어지간한 관종 아닌 이상 아주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사람이 적을수록 이게 더 티 나고 체감이 되니 그만큼 상처로 남는 것이다.
진짜 다 뒤집어엎는 육탄전은 최소 8~9명 이상의 단체모임에서 벌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단체모임은 수년 지속되어 어느정도 끈끈함이 있는 그룹이
아닌, 생긴지 얼마 안된 신생집단을 말한다.
‘패거리 문화’에서 공공의 적은 상당한 감초역할을 한다. 꼭 한 명씩 있지 않은가. 유별난 애. 나서는 애. 관종.
“쟤 좀 재수 없지 않아?”로 시작된 묘한 동질감은 겉보기엔 그 집단이 우애가 깊은 것으로 착각되기 쉽다.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 과연 그 집단에 달콤한 평화만이 찾아올까.
누구를 깎아내리며 형성된 레토르트 식품식 우정은 딱 주어진 유통기한까지만 제기능을 발휘한다. 애초에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생긴 friendship이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공공의 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냥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모임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친목의 목적과 동기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또 오래된 추억이 있으면 끝까지 붙잡고 갈 동기라도 생기는데 그게 아니니까 작은 것에도 괜히 예민해지고 더 미운 감정이 생긴다.
보통 사람들은 하다못해 “그동안 낸 경조사 비용은 돌려받아야지” 하는 생각에, 양에 안 차도 안 나가고 버틸 수 있는 동기가 있다. 우리는 보상받아야 할 무언가가 딱히 없다. 당장 우리 쪽 동호회 게시판만 봐도 신규회원을 모집하는 홍보글이 하루에 수십 개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모임이 쨍그랑 깨지고 있다.
“XX, 내 스타일도 아닌 게...”
탈퇴를 외치며 떠나는 그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걔랑 요즘 안 노니?”
“나 그 사람 마음에 들어”만큼 자주 쓰는 우리만의 안부 인사말이다. 그만큼 ‘같이 노는 친구’의 교체주기는 최신 휴대폰 유행속도만큼 빠르다.
“같은 쪽 사람들”이라는 두루뭉술한 방부제는 생각보다 우리들의 우정을 지속시키지 못한다. 하룻밤의 술자리로 ‘의형제가, 자매가 되었다’는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겹쳤다’는, 우리 세계에서는 거진 무기징역 급의 사유로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서로를 씹어대는 일은 부지기수다.
반대로 딱히 이유가 없는 데 틀어지는 경우도 있다. 싸우지도 않았고, 아주 미울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사소한 오해’로, ‘그냥 뭔가 안 맞는 것 같아서’ 조각난 관계도 남의 일만은 아니다.
예로부터 사람은 술 한잔 걸쳐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우리는 반대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한민국 주류업계가 영업이익을 유지하도록 소주병으로 거뜬히 받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 그래서 그 반대로 해야 한다고 외치고 싶다. 술기운에 텐션 올라서 맨 정신이 아닐 때 맺은 의형제, 맨 정신에 커피 마시고 다시 한번 확인하자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술을 마시지만 그 시간 빼고는 대부분을 혼자 보낸다. 사람을 만나면서 뺏겨버린 에너지를 혼자만의 취미와 생각으로 채워놔야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술 마신 다음 만남을 커피로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맨 정신일 때도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술 마실 때의 하이텐션을 기대하고 커피를 마시러 왔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에 실망한 (예비)의형제, 자매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또한 나고, 이 또한 나인데 굳이 상대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바꿔야 하는가.
모든 사람과 결이 맞을 수 없다. 맞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각자 갈 길 잘 가는 게 서로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아쉬워하지 말자. 살면서 우리가 겪게 될 인연들은 ‘생각보다 아주’ 많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