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쓰파인더 Sep 19. 2023

걱정을 그만하고, 하고픈 일 하기

불안함과 공존, 자유에 대한 기대

1. 표류하는 일과 몸의 쇠락

시티즌코난을 고도화하는 일이, 5개월째 표류중이다. 다음주엔 사업계획서를 수정하고, 관련 부서 협의해서 진도를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을 해나간다는 건, 노력하면 좋은 성과와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낙관이 있어야 한다. 지난 5월부터 9월은 그런 낙관이 깎여가는 시기였다. 부서의 한계 느꼈다. 


걱정을 많이 히면 속이 썪는다. 술을 마신다. 번잡한 마음을 흩뿌리고자 눈앞의 급한일을 하고선 웹소설이나 웹서핑이나 하며 불안을 달랬다. 운동을 멈췄다. 8월말 처음으로 코로나에 걸리고선 더 심해졌다. 아직까지 숨이 차고 기침을 달고 다닌다. 



여러움 속에 많은 이들의 이해와 도움 덕택에 행안부 사전협의는 '조건부 추진'으로 통보받았다. 다음 주엔 경찰청 부서 협의를 해야 한다. 어려울 거라 예상한다. 


공익적, 논리적으로야 치연이 자체 기술과 사업 관리 역량을 활용해 국가 예산으로 대국민 디지털 범죄 안전어플을 만들겠다는 것은 맞다. 논쟁지점은 '왜 치연이 하는가?' '치연이 할 능력이 있나?' '부서별 추진 방식이 맞는가?' 등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간 해왔던 일을 책임지고 흠결을 치유하려고', '치연은 다른 부서보다는 기술과 경험이 있음', '일단 대국민 피해 예방하면서, 시스템을 통합해주길 바람'인데, 이런 문답이 원만하게 오고갈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의심, 우려 등 부정적 감정을 견뎌야 한다. 


2. 지켜야 할 것부터 지키자. 

주말에 문서 작업을 하러 하루 출근했다가, 도통 손에 잡히지 않아 시간만 보내다가 집에 왔다. 그런데 의외로 집에 오는 기분이 편했다. 이제 슬슬 이 일에 대한 '포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번 일이 아슬아슬 여기까지 왔지만, 더 무리해서 소중한 것을 잃을 수는 없다. 두어날 눈에 띄게 망가진 몸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싫은 일을 하지 않겠다. 최대한 줄이겠다. 어려운 사람, 불편한 관계, 두려운 상황을 최대한 피하련다. 몇 주 전 사업을 둘러싼 기관-부서간 갈등이 표출되었을 때 15분 여 고성과 몰아침이 오간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를 끊고 정신이 멍해졌다. 앞뒤 맥락을 짚어 잘잘못을 따지는 것 조차 의미 없다. 2년후 퇴직할 곧 50세 남자는 그런 상황 자체를 피해야 한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찌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를 칸칸히 구분해서 말할 수 있겠나, 나이 먹으면 개인사도 복잡해진다. 그러나, 이젠 서로 어려운 사람이면 감정이던 관게 든 작별하고 지워야겠다.  친애하는 김모 친구는 요즘 화장실에서 하는 일이 '연락처 지우기'라고 하더라. 


실은 공무원들이 대부분 그리 산다. 정해진 보수와 주어진 직급 속에서 요구받는 일만 최소화하고 자신의 안녕과 만족을 위해 산다. 나는 그리 살지 못했다. 그것이 좋은 일도 만들어냈지만 어찌 그러하기만 했겠나. 이제 퇴직을 3년내 앞둔, 인사발령의 변수도 있는 시점에서 지금 하는 일만 정리하는 것도 실은 큰 일이다.


가지고 있는 작은 에너지로 고장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겠다.


거의 마음을 비우고, 귀가하면서, 남은 기간, 퇴직 후에 뭐할까 생각했다.


3. 뭘하며 살까

주변 퇴직자들 뵈면 남은 삶이 너무 길기에 일을 해야 한다는 분들도 있고, 여러모로 여유있는 분은 당분간 아무 생각없이 쉬겠다고 여유있게 지내시는 분도 있다. 쉬시는 분들도 삶의 의미를 무엇으로 찾을까 생각은 하시더라.  난 어떨까?


연구는 계속 해야겠다. 경찰청 부서에서 2년, 치연에서 6년, 뭔가 배우거나 만들어 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시행착오와 시제품 정도이다. 기술을 모르고 목표했던 성능을 보지 못한 사례가 많다. 이쯤에서 멈추긴 아깝다. 매몰비용이라 할 수 있겠으나, 할수 있는 만큼은 계속 도전하고 싶다.


디지털범죄에 대한 대응 연구 개발을 계속 하련다.  피해 예방이나 피해복구를 지원하는 제도 연구나 기술, 서비스 개발을 계속 해야겠다. 의외로 이 부분이 공공 민간의 공백이다. 


민간 조사(탐정)의 역할과도 닿아있다. 수십여개의 사례 정도를 봤는데도 공통되는 틀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개별적이 도움을 주려고 해야 구체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공개 데이터를 수집해서 인터넷 공간에서의 디지털 위험을 탐지하는 기술 개발은 꾸준히 해야 할 일이다. 어디선가 시작해야 할 것이고, 우리 연구소는 인프라와 인력은 있어서, 퇴직하고서도 협업계약해서 개인적인 연구과업을 하고 싶다. 


책을 써야겠다. 졸고 <스마트치안> 초고가 매진되었다. 개정판을 써야겠다.


프로그래밍을 몇년째 하다가 만다. 연초에 책을 대거 샀는데, 반성. 올해 빅분기 실기 봐야 한다. 


여행을 많이 가고 여행기를 남기고 싶다. '삼프로 티비'의 <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를 매번 본다. 문헌학자가 도시의 역사를 읽고 해설하는 것에 배우고 재밌었다. 그럴 내공은 없지만, 소박하게 기차를 타고 먼 곳을 걷고 느낀 점을 보여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좋은 사람과 계속 좋아야 한다. 나는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아닐까 겁나긴 한다. 지금부터라도 더 잘해야겠다는 50살 앞두고 되뇌인다. 




작가의 이전글 스마트치안지능센터 연혁과 계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