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쓰파인더 Nov 10. 2023

가을 지리산 서부능선길

지리산 정령치-바래봉, 실상사 여행

10월 어느 주말, 주말 산친구 G, H와 남원을 갔다.

 

남원 실상사

G의 친구 Y형이 사는 곳에 가보기로 했는데 우리를 함께 초대해 여행을 만든 것이다.

첫날은 남원 지리산 마을 황톳집 1박, 2일 차 지리산 바래봉을 가는 계획이었다.

전 주 해외출장, 그 주는 박람회 부스 운영,, 바삐 살다가 여행도 급히 따라갔을 뿐 머릿속에 그려보지 못하고 새벽 기차에 올라탔다.


남원이라, 모르는 도시도 아니지만, 이미지가 없었다. 20년도 전에 지리산에 갔다가 일찍 하산하는 게 아쉬워 하루 들러서 광한루를 갔던가? 하는 정도?


남원 역에 내렸더니 G의 친구분, Y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군대 친구라 한다. 나이는 Y형이 2살 많은데, 빠른 년생으로 1학번 위이고, 그럼에도 같은 해에 입대했으니 친구로 지내는 것. 거의 25년 전 인연, 그것도 군대에서 만난 인연, 빠른 연생이라 2년 형님인데, 친구라, 참 한국 인간관계의 다채로움이다. 우리도 친구의 친구라고 야자를 할 수 없는 노릇, 형님이라 인사 올렸다.


역에서 내려, 남원 역 인근 짬뽕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삼선짬뽕, 최고였다. 거의 역대급.

다음날 또 가고 싶을 정도. (일요일은 안 해서, 2번 먹진 못했다)


Y형이 살고 일하는 곳, 운봉면으로 넘어왔다. 시 중심에서 넘어오며 느낀 것인데, 남원은 옛 남원군과 운봉일대가 합해져 하나의 행정구역이 되었지만, 전혀 다른 생활권임을 알겠더라. 운봉에 가까워지며 지리산 옆 함양 등 경남의 서남부와 닿아 있었다.

 

운봉면과 함양을 오가며 느긋하고 마음이 개운해지는 오후를 보냈다.

Y형은 학생 운동과 함께 청춘을 보내고 IT기업에 일하다 지리산 마을로 귀농했다. 농사를 하면서도 시민사회단체들을 지리산 마을에서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산 그림자가 따뜻하게 내려앉은 들판 옆 카페 형 교육-공유 공간은 발랄하고 묵직한 내공을 보여주고 있었다. 형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인격이 자리에 스민 듯했다.

커피를 마신 후, 실상사를 안내해 주셨다.  독특한 절이다. 보통 사찰은 산기슭에 있지 않나? 조선 시대 쫓겨가기도 했지만 반대급부로 내려보는 시선을 획득한다. 첩첩 히 위계를 가진 공간은 그 자체가 신비와 권위이다. 실상사는 마을 한가운데, 벌판에 있는 절이다. 마을의 중심이고 마음과 몸을 돌보게 하는 곳이다. 현실의 한가운데 있었다. 4대 강을 반대하며 땅끝까지 삼보일배한 도법스님, 수경스님이 이 절의 주지셨다. 어쩐지.

지역, 예술, 약자와 소통하는 실상사는 곳곳이 이채다. 입구 사천왕문부터 실험적 미술품을 전시했다. 관음전엔 오래된 철불이 기원하는 이를 마주했다. 금불이 아닌 철불이며 그 뒤엔 탱화가 아닌 지리산 산맥과 마을 그림이 있다. 삶 속에서 함께 하는 부처님이신가.  관음전 앞엔 세월호 아이들을 기리는 촛불 전시물들... 넓게 트인 절에서 공기는 선선, 햇살은 따뜻, 마음 평온해지는 산책을 했다.

인근 임자를 올라 높고 평평한 바위 위에 남자 넷이 앉아 구름 가린 지리산 능선과 천왕봉을 한참 보았다. "야 막걸리 한 병 사 와봐라", "말하는 니가 사와라 이 넘아", "여기서 먹고 운전해 내려가면 음주 운전 아니냐", "경찰 있잖아", "......... 못 들은 걸로 할게"라는 시답잖은 얘길 하며.

읍내(?)에서 술과 고기를 사서, 숙소로 갔다. 숙소는 '순이네흙집', 산비탈을 차로 한참 올라 만났다. 큰 방과 주방 겸 거실을 둔 독채들이 나란히 있었다. 똑똑하고도 점잖은 강아지가 졸래 졸래 따라다니고, 문을 열어 보니 가까운 코스모스 너머 산 그리메들이 보였다.

어둑해질 무렵 텃밭에서 고기 구워 술 마셨다. 조명이 드문 마을, 해가 지자 별이 보였다.  Y형이 사는 얘기, Y형과 G의 인연을 들었다. 마지막은 다들 취해 잠들었다. 황토방 구들장은 뜨겁고 공기는 선선한 느낌이 색달랐다. 밤중에 화장실 가는데 산중에서 모두 암흑, 눈에 보이는 게 하나 없어 바닥을 엉금엉금 짚어 기어갔다.


다음날 아침, 좋은 공기에서 자서 그나마 나았다지만 온몸을 때리는 숙취에 끙끙댔다. 서로 '이 컨디션에 진짜 산 가? 레알? '투덜대며 주섬주섬 배낭을 쌌다.  Y형이 안내해 준 코스는 버스를 타고 정령치라는 산맥까지 올라가 거기에서 바래봉까지 걷는 길이었다. 지리산 서부능선이라고 부른단다. 지리산 주능선(노고단-반야봉-천왕봉)은 아니지만 백두대간의 한 축을 이루는 길임을 와보고서야 알았다.

지리산 종주를 할 때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그리메를 보는 걸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는 길이었다. 요즘 운동 게을리해서 높은 경사 오갈 때 걱정했지만, 괜찮았다. 각자 처한 일, 얼마 전 있었던 웃긴 일, 세상의 나쁜 넘들을 씹었다. 이 날의 웃음 대상은 '(무등산 입구에 있는) 증심사로 와'라는 전화 통화를 못 알아 들었다는 H의 가족 얘기였다. '등심을 사라고?', '왜 점심을 사라고 해?' 했다는. 아니, 어찌 광주 태생이 '증심사'를 모를 수 있단 말이냐. 소풍 때마다 출발한 추억의 그곳을, 등등 촌넘들끼리의 서로 쓰다듬어주기.

바래봉 가는 길은 예전에 목장도 있었을 정도로 고원의 평야다. 억새가 가득했다. 능선길은 시야가 트여있고, 산 가운데를 홀로 걸어가는 기분이 후련했다. 산속은 낙엽들이 푹신 미끌했다. 오른쪽으로 노고단부터 천왕봉까지 길게 이어진 능선을 보며 4년 전 함께 갔던 길을 짚어봤다. '야 거기서부터 저기까지 걸었단 말이야. 미쳤네. 이젠 못하겠다' 서부 능선은 고즈넉하고 억새가 가득한 길은 풍취가 있었다.  철쭉 무렵 주말엔 더 아름답단다. 그때 한번 다시 와야지


바래봉 정상을 찍었다. 정상 전 전나무 숲길 근사했다. 용산마을(응??)로 하산하며 짬뽕(나)이나 추어탕이냐 논쟁했다. 알고 보니 일요일 은 짬뽕집 안 하는 날이라 부질없는 핏대.

내려와 추어탕으로 저녁을 먹고 Y형과 헤어져, 기차를 올라탔다.


남원여행 좋았다. 짬뽕, 실상사, 운봉마을,  바래봉 가는 능선길. Y형의 농사와 아직도 이어가는 사회운동을 보며 나도 저리 살 수 있을지 상상했다. 목표를 위해 사람과 자원을 조직화하는 일은 지금도 하는 일이고, 좋아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더 창의적으로 헌신하는 삶은 존경스럽다. 지리산 마을은 어떤 면에선 좋은 장소이다. 도시 속에서 여기저기를 이동하고 사람을 바삐 만나는 습에 젖어 있는 나로선 그런 평온 과 절제를 할 수 있을까?


새로운 곳. 좋은 생각을 함께 하고 만들어준 친구 G,H 우릴 안내해주시고 지리산 생활을 보여주신.Y형에게 감사한다

  



작가의 이전글 요르단 암만 출장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