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쿄언니 Aug 03. 2022

일본인 상사가 말했다. "더 안 하셔도 돼요."

일본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입사한 지 딱 2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월급도 두 번 받았고, 나름대로 회사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우리 회사에는 직속 상사와의 1:1 미팅이 매주 존재하는데, 우리 팀은 금요일에 실행한다. 오늘은 어떤 걸 또 물어볼까, 하며 나만의 노트에 상사에게 할 질문을 빼곡하게 적어놓았다.


아직 누군가를 평가할 레벨이 아니기 때문에, 감히 우리 상사에 대해서 말하자면 우리 상사는 소위 말하는 엘리트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츠에 입사하여 라인으로 이직한 후 현재 우리 회사로 온 인재.


사실 다녔던 회사가 대기업이라고 해도 그 개인이 일을 잘하는가?라고 하면 다른 차원의 이야긴한데.. 우리 팀장은 일 잘한다. 그래서 매주 팀장과의 1:1 미팅이 기대가 된다. 마치 1타 강사한테 1:1 고액 과외를 받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그날도 평소와 같이 1:1 미팅이 시작되었다. 헷갈리는 부분에 대해 질문하고 배워가며 '역시 오늘도 유익한 시간이었어.' 하면서 뿌듯해하고 있는 내게 팀장이 말을 걸었다.


ㅇㅇ씨 혹시 인사부한테서 뭐 들었나요?


순간 갑자기 내가 무슨 잘못했나?라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 아니요? 무슨 일 있나요?


나의 목소리의 떨림이 느껴진 걸까. 팀장님이 살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냐고요.. 이쪽은 속이 탄단 말입니다..! 혼자 웃지 말고 같이 웃어요!!


ㅇㅇ씨, 연수 더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보고하는 것도 그렇고 수습기간도 이번 주로 끝이에요.


이게 무슨 일이지? 연수를 더 안 해도 된다니? 그리고 수습기간도 끝..?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느라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팀장은 말을 덧붙였다.


일을 워낙 잘하셔서 연수하면서 수습기간 하는 시간이 아깝더라고요.
그래서 대표님한테 말씀드려서 연수도 끝내는 겸 수습기간도 끝내는 걸로 했습니다.


내 손으로 쓰기 민망한 글이지만, 정말로 딱 저렇게 말씀해주셨다. 일을 워낙 잘해주고 계셔서 더 이상의 연수나 수습기간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 같다고. 그래서 정말 파격적으로 입사 2달 만에 수습과 연수가 동시에 끝났다.


여기서 잠깐 회사 시스템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회사는 무조건 3개월의 수습기간을 가지고 2년 미만의 주니어의 경우에는 6개월 동안 연수를 받는다. 업무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3개월, 3개월 이렇게 다른 업무를 맡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나는 본래 연수기간 6개월이 아닌 2개월 만에 연수기간이 종료된 것이다. 팀장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사실 스스로도 기획자로써 잘 맞는다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일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이렇게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상사에게로부터 인정까지 받다니 뭔가 감개무량해졌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유일무이한 2개월만 연수받고 바로 부서에 배속된 엘리트 사원이 되어버렸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1년 3개월을 기다린만큼 나랑 맞는 팀장, 회사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게 기다림에 대한 보상인가..?


어쩌다보니 상사들의 기대를 안게 되어 부담감이 크지만, 그것을 부담감이라기보다는 앞으로 나의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민폐 끼치지 말고 후회없이만 해보자, 화이팅!!



작가의 이전글 일본 광고회사에서 한국 광고주 찾기 프로젝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