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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구 May 01. 2024

비가 내리면 한 번쯤은, 축제로.

엇나감이 두려운 당신에게


일본 간사이 지역의 커다란 항구도시, 고베.

그곳에서는 일 년에 한 번, 지역 마츠리가 열립니다. 올해 마츠리는 4/21(일).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여정 고베에 할당한 일정은 하루였는데, 놀랍게도 축제 당일이었던 겁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도착한 고베 전철역. 그곳에 내걸린 축제 현수막이 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더군요.



일본의 지역 주민들은 연중 가장 행사인 마츠리 준비에 많은 공을 들인다고 다.

물론 한국도 그렇겠지만 일본인들의 지역사랑은 특별히 유별나다고 하지 않나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날엔 하늘에서 비가 많이 쏟아졌습니다.

비도 오고 우중충한 날이었기에 취소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역을 빠져나오는데,

거리를 가득 메운 구름 같은 인파가 저의 섣부른 판단을 보기 좋게 깨부쉈네요.


그래, 비가 온다고 해서 축제를 열지 말란 법이 있던가?



댄스 공연을 보기 위해 길가에 잠깐 멈춰 섰습니다.

많은 인파에 가려 까치발을 들어서야 무대를 겨우 볼 수 있을 정도.

댄서들의 지인일까, 다들 하나같이 카메라 화면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꼬마 하나가 곁에 멈춰 서더니, 무대를 찍기 위해 카메라를 쥔 손을 연신 하늘로 뻗어대는 것이 아닌가요.

이내 그 아이가 우산도 접어들고 너무 열심히 폴짝거리길래, 짧은 일본어로 용기 내어 말을 건네었습니다.

친구의 무대를 응원하기 위해 타 지역에서 찾아왔다던 13살의 꼬마 아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영상을 찍어서 친구에게 보여주기로 했답니다.


비가 그렇게 오는데도 용케 큰 걸음을 한 걸로 보아 보통 친한 사이가 아닌듯 하더군요.

그냥 지나치기엔 두 사람의 우정에 꽤나 큰 감명을 받았던 터라, 도 보답을 해야 했고 그 아이의 폰을 받아 들어 친구의 무대를 10분 남짓한 영상에 담아냈습니다.

종일 짐을 들고 다닌 탓에 비록 팔은 저려왔지만, 그게 뿌듯함의 통증이란 걸 알기에 즐거웠습니다.

그 덕에 일면식도 없던 일본 꼬마아이와 sns 친구도 되고, 친구의 멋진 댄스 영상도 얻은 건 덤이라고나 할까요?


후에 무대마치고 내려온 어린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오래 준비한 무대일텐데 하필 비가 와서 너무 아쉬울 것 같다고.

데, 돌아오는 답변에 씨익- 미소가 번졌습니다.

힘든 날씨 덕에 더욱 극적인 무대를 보여줄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고, 온몸을 때리는 빗방울의 시원함은 덤이라 말에.

꾸며내지 않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그 말은, 냥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 , 더 어린 쪽은 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지나가는 사람들의 우산에 치여 빗물이 튀고 양말이 다 젖어도,

예상보다 다소 적은 인파에 준비한 컨텐츠들의 반응이 미적지근해도,

열심히 준비한 무대에 서서 바라본 관객석이 조금은 헐빈해도,

그 공간 속 사람들은 모두 즐거웠습니다.



맑으면 맑은 대로, 흐리면 흐린 대로, 비가 오면 비 오는 대로 각각의 매력이 있습니다.

마츠리가 그렇듯, 인생도 그렇습니다.

고베에서의 우중 마츠리는 오히려 날씨 덕분에 더욱 특별한 하루가 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간 지독하도록 엇나감을 었지만,

만에 반가웠요.

조만간 또 웃는 얼굴로 맞 수 있게 된다면

더 없이 좋겠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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