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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Jul 25. 2024

아무래도 정년 퇴직을 해야겠다

저번 달, 인디스쿨을 잠시 탈퇴했다.


내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였다.


인디스쿨은 약간 개미굴같아서 넋 놓고 보다보면 몇 시간도 볼 수 있다.


다만 유저들이 많이 모이는 여느 커뮤니티가 그렇듯(아무리 이 커뮤니티가 초등교사들만 모인 비교적 건전한 커뮤니티라 하더라도..) 부정적인 글이 눈에 많이 띈다는 게 문제였다.


인기글을 보아도, 실시간 피드를 보아도 선생님들이 겪고 있는 고충과 금쪽이&진상 학부모의 횡포, 관리자들의 폭정, 교육부와 교육감의 이해되지 않는 행보 등으로 내용이 가득차있었다.


보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부정적인 기운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인디스쿨에서 잠시 눈을 떼고 교실 속 아이들을 바라보면, 이 아이들은 참 밝고 어리고 순진한데, 인디스쿨 속의 글들을 읽다보면 마치 학교가 지옥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인디에는 미담도 많고 양질의 학습자료도 많지만, 사람이란 어쩔 없는지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글에 눈이 갔고, 나도 모르게 그런 글들에 감정이입해 진심으로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었다.


이게 나한테 썩 좋은 것 같지 않았다.


책 <교사라는 세계>를 써놓고 그 교사라는 세계에 정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인디스쿨을 잠시 탈퇴했다.


물론 '잠시'라고 쓴 이유는 아무래도 여기에 영영 가입을 안하고 버틸 수는 없을 거 같기 때문이다.

(얼마 후 다시 가입은 할 듯...)


다만 지금 탈퇴를 함으로써 잠시 습관의 고리를 끊어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관성의 루틴을 잠시 끊어놓으려는 내 나름의 획기적인 시도다.


솔직히 매일매일 인디 들어가면서 느꼈던 점은..........


'너무 ... 피곤하다 ..'이다.


현실에서 보내는 아이들과의 알콩달콩한 시간들조차 뭔가 퇴색되는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내가 아직 현실을 모르는 수도 있는데 분명히 진상 학부모와 금쪽이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은 정말 착하고, 아이들과 함께 교사라는 직업을 있는 데까지 하고 다.


내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애정하는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아이들을 보다보면 그래도 희망이라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미 살아온 시간들이 있어서 잘 바뀌지도 않고, 자신의 잘못을 잘 뉘우치지도 않는데 아이들은 아직 말랑말랑해서 어른이 조금만 신경써주고 다듬어주면 바뀐다.


그러한 점이 참 마음에 들어서 나는 아이들과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어차피 먹고 살려면 직업은 가져야 하는 거고, 굳이 일을 해야된다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일을 선택하겠다.


교사라는 직업은 절대 다수의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직업이며 나는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 시간들이 꽤나 마음에 든다.


아이들은 나를 많이 애정해주고, 그 애정이 참 고맙기 때문에 돈도 벌면서 사랑도 받는 이 직업이 참 좋다.


아무래도 정년퇴직을 해야 될 것 같다. (건강과 상황이 받쳐준다면 최대한)


유튜브나 인스타를 보다보면 '내가 교사를 그만 둔 이유'라던가 '내가 교사를 그만두고 oo를 하는 이유' 등의 제목을 단 콘텐츠들이 종종 눈에 띈다.


나도 유독 애들이 날 힘들게 한 날이나 진상 학부모때문에 열받는 날에는 그런 콘텐츠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할 때도 있었다.


다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오래오래 교사를 하면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콘텐츠도 보여주면 좋겠다. 이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한 이야기가 있으면, 그 반대의 이야기도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남긴다.


당연히 때려치고 싶은 날도 왜 없겠냐마는.... 진짜 그런 날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틀을 보았을 교사라는 직업은 내게 소중하고 고마운 직업이다.


물론 정년퇴직을 하고 싶다고 제목을 달긴 했지만 살다보면 어떤 일이 닥칠 지 모르니 더 짧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는 실낱같은 소망을 표현해보았다.


몇 년이 지나도 내게 편지를 보내 선생님과 함께 보냈던 그 1년이 참 좋았다는 말을 해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더욱 나와 함께 하는 1년을 잘 채워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사람인생 100년이라고 보았을 때 생각보다 1년은 긴 시간이니까, 그 긴 시간 나와 함께 한 것을 두고두고 참 좋았다고 기억할 수 있도록 잘해야겠다.


p.s. 교사를 그만 둔 것은 자신의 자유이나, 그만두고 나서 교사라는 직업을 비하하거나 비난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다 자기 사는 대로 사는거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직업을 자신이 이젠 하지 않는다고 해서 격하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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