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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나 Sep 14. 2020

심리 상담, 인생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 튼튼한 마음이 갖고 싶다면






내가 상담을 받기로 결심했던 건, 행복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느껴서였다. 감정의 낙폭이 컸다. 매번 무거운 돌덩이를 언덕 위로 겨우 밀어 올려놓아도, 사소한 일에 치여 다시 저 아래로 맥없이 굴러 떨어지는 걸 봐야 하는 시지프스 같았다. 기분의 디폴트 값이 행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마이너스가 아닌 0이었으면 했다. 마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원인을 찾고 문제가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고 싶었다. 고쳐야 할 것이 있다면 고치고 회피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직면해서 잘 살아내고 싶었다.


가까운 심리 상담센터를 검색했다. 집 근처에 있는 상담센터는 대부분 청소년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거나 특정 시간만 열려 있어 퇴근 후에 상담을 받기가 어려웠다. 막연한 심정으로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누군가가 친절하게도 1급 심리상담사 목록과 위치를 정리해놓은 페이지가 있었다. 그중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고, 조금은 쑥스러운 마음으로 "저, 상담을 받아보고 싶은데요."라고 말했다. 예약은 바로 잡혔다.


나는 매주 수요일 상담소에 갔다. 상담 초기에는 최근에 나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문제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3회의 집중적인 상담을 거치자 그 문제에서 내가 조금씩 해방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나의 성향과 목표, 업무 환경 등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로 상담의 주제가 옮겨갔다. 내가 외부에 반응하는 패턴은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이나 사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인생 전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MMPI라고 부르는 다면적 인성검사도 받아, 결과지를 함께 보며 상담을 받기도 했다.


나는 혼자서 3분이라도 말하기를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선생님과 마주 보고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갔다. 나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존중해주고 수용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얘기든지 속 시원하게 꺼내놓을 수 있었다. 내 생각의 과정과 원인이 해석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김밥 속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고 끼니를 때운다며 먹고 있었는데, 김밥 재료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며 오늘은 오이가 안 들어갔어요, 이 시금치는 남해에서 재배해서 좀 단 맛이 나요, 몰랐죠? 하고 알려주는 주방장을 만난 것 같았다. 내가 너무 잘못한 것 같아 힘들어요, 일을 하고는 있는데 자신이 없어요,라고 말하며 또 돌덩이를 놓쳐버리기 전의 자세를 취하면, 잘 보면 안쪽에 홈이 하나 있어요 은나씨, 다음부터는 거길 잘 잡아봐요,라고 차분하게 알려주었다. 계속 기분이 저하되게 만드는 환경에도 문제가 있으니 이직을 고려해보자는 적극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상담을 받자마자 삶이 즉각적으로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한 시간 동안의 대화가 즐겁고 힘이 된 날도 있었지만, 상담을 받은 후 마음이 무거워지던 날도 있었다. 1회에 10만 원이라는 상담료가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중간에는 전이가 이루어진 건지, 선생님이 자세하게 질문을 하며 가까이 다가올 때면 뒤로 물러나 선을 긋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외부의 세상에만 신경 쓰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내가 외부적인 사건에 반응하는 패턴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독인 경험은 상담 이후에도 일상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사람들을 만났을 때 떠오르는 균형 잡히지 않은 생각들이나 나의 무의식적인 행동들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다. 10회의 상담이 끝난 뒤 선생님은 이제부턴 필요할 때 2~3주에 한 번씩 와도 좋다고 하셨고, 그 이후 감정의 동요가 크게 일어났을 때 두어 번 더 찾아갔다.


살을 빼거나 근육을 키우기 위해 헬스장을 찾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것은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대학교 때 심리학을 복수 전공했기 때문에 심리 상담에 대한 큰 거부감은 없었지만, 주위에서는 내가 심리 상담을 받는다고 이야기했을 때 의외로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담을 받기로 한 이유를 잘 설명해줘도, 내가 남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큰 문제를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큰 문제나 대단한 사연이 있어야만 상담 센터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혼자서 노력해도 잘 나아지지 않다면, 또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한 시간 동안 내 말을 집중해서 들어주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해줄 전문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태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는 세계 안에는 수십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쌓인 경험과, 수많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모두 꺼내어 설명하기 힘든 세밀한 생각과 감정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다가도 갑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날들이 있다. 그럴 때는 시간을 들여 얽힌 부분을 천천히 풀어보고, 마음 근육을 키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 Robert Harkness from Unsplash



10년 넘게 운전면허를 장롱으로 두다가 최근에 다시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보통은 신호와 구글 내비게이션만 번갈아 보며 정신없이 운전하다 목적지에 도착해야 겨우 한숨을 돌리지만, 가끔 뻥 뚫려있고 위에는 흰 구름만 펼쳐져있는 도로를 달리며 기분이 들떠올 때면 그때 상담 선생님이 해준 말이 생각난다. "은나씨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아주 깨끗하고 멋진 새 차가 한 대 있는데, 사양 좋은 엔진에, 빵빵한 옵션에, 에너지도 좋고 나무랄 데가 없어요. 그런데 운전자가 계속 당황하면서 핸들을 자꾸 한쪽으로 빗겨 움직여요."라는 뼈있는 조언이 담긴 서투른 드라이버 이야기. 연락 한번 드려볼까 싶어도 늘 생각만 하다 끝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다며 또 한 번 미뤄보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우연히 마주치는 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똑바로 운전 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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