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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나 Sep 27. 2020

나를 사랑하는 게 말처럼 쉽나요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이 모습 그대로 사랑해줄게




한동안 '자존감'이라는 말이 화두였다. 서점에 가면 자존감을 키워드로 한 책이 쉽게 눈에 띄었고, SNS에서는 자존감 테스트,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등의 글들이 쏟아졌다. 내게는 자존감이라는 말이 마치 목적지 같았다.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면,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모델 5단계쯤의 레벨에 오른 완전한 사람이 되면 주어지는 반짝거리는 왕관처럼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내겐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늘 불안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는 불안정해서 그런 줄 알았고, 취업을 하고 나서는 아직 이루어야 할 목표가 있어서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면, 안정적인 연애를 하면, 좋은 직장을 다니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를 열심히 돌보고 꾸몄지만, 하나의 불안을 잠재워 놓으면 다른 불안이 슬그머니 생겨났다. 마치 불안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고 싶어 했던 일을 시작했을 때에도 혹여나 실수라도 하지는 않을까, 익숙하지 않은 내용의 번역을 맡아 밑천이 드러나진 않을까, 늘 긴장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뿌듯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칭찬받지 못한 다른 것들도 얼른 깨끗하게 다듬어 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사람들이 사랑해준 건 내가 잘 다듬어 놓은 모습이지, 나의 결점, 미운 생각, 슬픔, 모순적인 사고방식 같은 것들이 아니니까.


나의 부정적인 감정과 불안이 내 성격 형성 과정에서 생겨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과거 트라우마 찾기에 나서기도 했다. 성장 환경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결핍되진 않았는지 기억을 꺼내보려 애썼다. 찾아서 고치고, 고칠 수 없다면 보이지 않도록 쓱싹쓱싹 지우고, 어린 시절부터 아무런 결핍 없이 탄탄히 잘 다져진 허물없고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다 또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이 튀어나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모습에 화들짝 놀래며 다시 덮어 감춰버리려 한다면 그게 덮어질까.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면을 반질반질하게 닦아 놓으면 다른 모습들도 저절로 가려지는 걸까. 자존감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저절로 생긴다는데, 그 쉬워 보이는 마음이 내겐 참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보게 된 한 테드 강연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한 관계 전문가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어릴 때부터 가족과 연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것을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을 변함없이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오랜 시간 헤맸지만,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며 마침내 자신을 가장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자신을 평생 사랑해줄 누군가가 나타나 프로포즈 해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높은 산 꼭대기 혹은 바닷가에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하는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정성 들여 고백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영상의 메시지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꼭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고 사랑받기 위해 너의 단점을 고치려 하는 걸 그만둬. 스스로도 이해해주지 못하면서 모두가 너를 사랑해주길 바라는 건 모순적인 마음이야.


내 불안의 원인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 상대방의 목소리와 뉘앙스, 표정에 의지하며 나의 안정과 행복을 타인이라는 불확실한 세계에 걸어두고 있었다. 내가 날 사랑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줘야 완전히 채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상대방에게서 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찾으며 기뻐하고, 교감이 잘 되지 않으면 외로워하며, 다른 사람들이 봐주는 나의 모습만 가꾸고 돌봤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힘든 결점이나 약한 모습 같은 건 고쳐야 할 것으로, 때로는 병리적인 것으로 여기며 지워버리고 싶어 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의 반쪽짜리 모습만 사랑하려고 했던 것이다.


오히려 내가 더 이해해줘야 하는 건 다른 사람들이 사랑해주지 않는 나의 모습이었다. 혼자 있을 때 낮게 가라앉아있는 모습, 우울하면 퇴근하는 길 빵을 잔뜩 사들고 가서 폭식하고 잠드는 모습,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남몰래 바짝 얼어있는 모습, 주위를 의식하며 작아지는 모습, 마음대로 되지 않아 혼자 짜증 낼 때의 달아오른 얼굴 같은, 감추고 싶어했던 나만 아는 모습들. 왜 몰랐을까. 이런 모습들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오직 나만이 돌봐주고 위로해줄 수 있다는 것을.


다음 날, 나는 하얀 종이를 펴놓고 천천히 적었다. 나 자신에게 프로포즈하는 마음으로.


은나야, 이 세상에서 너를 제일 많이 사랑해. 이 사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아.


최선을 다한 네가 실패하는 일이 있어도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해줄게.


네가 부끄러워지거나 작아지는 순간에도 널 혼자 두는 일은 없다고 맹세해.


정성스럽게 적은 글자들을 보며 반복해서 되뇔수록 마음이 단단해지고 안정되는 것 같았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자존감은 높은 레벨에 있는 완벽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부끄러워하고 숨기고 싶어했던,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나의 나머지 반쪽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실수를 해도, 모난 마음이 드러나도,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이 있어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줘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미운 마음이 고개를 들 때, 내가 초라하게 느껴져 집에 꽁꽁 숨어있고 싶은 날, 잊지 않고 다정하게 말해줄 것이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이 모습 그대로 사랑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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