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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나 Sep 02. 2020

발표가 제일 무서웠던 나, 통역사가 되다

떨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퇴사를 결심하고, 친구들에게 통번역대학원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고 알리자 다들 반응은 비슷했다. “그래, 넌 영어 잘하니까 잘할 거야.” 하지만 나는 소위 말하는 해외파도 아니었고, 그저 영어가 좋아서 기회가 될 때마다 교환학생, 해외 단기 프로그램 등을 다녀오며 꾸준히 공부한 게 전부였다. 통번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양의 공부와 노력이 필요했다.


더 큰 장애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나의 발표 공포증이다. 나는 책과 글을 좋아했지만 표현을 잘하거나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늘 친한 친구들 3~4명과 어울렸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을 불편해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취업을 하면서 나의 내성적이고 부끄러움 많은 성격은 점점 더 콤플렉스가 되어갔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일이 생기면 며칠 전부터 긴장을 하고, 발표하는 내내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


대학을 졸업하고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는 침체된 팀 분위기를 개선한다며 아침 회의 시간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간단한 스피치를 하도록 했는데, 아침부터 진땀을 흘리며 스피치를 겨우 끝내고 자리로 돌아오면 너무 부끄러웠다. 또렷한 목소리와 발음으로 자신감 있게 말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내가 통역사가 되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긴장이 되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평생 발표를 두려워하고 자신 없는 모습으로 살고 싶진 않았다. 부딪혀보고, 도전해서, 오랜 콤플렉스를 극복해 훌훌 털어버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볍게 나아가고 싶었다.


통번역대학원 입시학원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통번역대학원에 입학한 후에도, 나의 발표 공포증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내 차례만 되면 머릿속이 새하얘지기 일쑤였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준비한 내용을 반도 전달하지 못해 혼자 속상해한 적도 많았다. 다들 잘만 하는데, 왜 나한테만 이렇게 어려운 건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긴장하게 되는 상황에 계속해서 나를 노출시키며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나는 통역사가 되었다.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해 전사 임원들과 사장단, 투자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동시통역을 했고,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으로 이직해 전 직원들이 모인 행사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통역사는 더 정확하고 매끄럽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서 내 직업이 더 좋았다. 반복적인 삶 속에서 안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통역 일정이 잡혀 있으면 며칠 전부터 약속을 잡지 않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자료를 보고 통역을 준비했고, 일을 잘 마치고 나면 밀려오는 뿌듯함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연봉이 두 배 가까이 올랐음은 물론이고, 일을 할 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동기 부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무엇보다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목표를 이룬 경험은 나에게 큰 자신감이 되어 주었으며, 이후에 다양한 선택지들을 두고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영향을 미쳤다. 만약 내가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주저하고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없어서 선택하지 않은 길을 계속해서 동경하고 후회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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