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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우 Feb 23. 2023

매번 최선을 다한 너에게

잘하고 있다는 거 알고 있단다

숫자 6을 바르게 쓰지 않으면 0처럼 보이고 반대로 0을 야무지게 쓰지 않으면 6처럼 보인다. 자음 ㅇ을 역시 야무지게 끝과 끝을 만나게 쓰지 않으면 ㄷ으로 보인다. 아이들에게 누차 바르게 쓰라고 지적하는 부분이지만 가만 보면 나도 그렇게 적을 때가 많다. 그러 맥락으로 이해할 뿐이고 수학에서는 푼 노고를 봐서 정답해 준다 정도 될까.



시간을 정해놓고 암산을 하는 연습을 하는 우리집 어린이의 문제지를 채점하며 아깝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얘가 6을 쓴 걸 알겠는데 누가 봐도 0처럼 보여. 이건 노고를 인정해 줘야 하는 거야 그냥 보이는 대로 채점하면 되는 거야? 평소 글자며 숫자를 바르게 쓰는 걸 감안하면 시간에 쫓겨 그랬다 라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마음에 잔소리도 여러 번 했다. 이거 이거 이거를 누가 그렇게 보겠냐고. 아깝게 몇 개 더 틀리는 거 아니겠냐고.



오늘은 채점을 하며 문득 이건 영 고쳐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 푸느라 바쁜데 언제 숫자 바르게 쓰고 있겠는가 말이다. 채점하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정답이 될 수도 오답이 될 수도 있다. 따져 물을 수도 없고 이건 아이가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숫자를 왜 이따구로 쓰냐고! 라고 아이를 나무라지 않은 그간의 내가 기특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좀 연관성이 없나?



한 문제, 한 문제가 소중해서 이거 이거 정답으로 하면 좋은데 하는 조바심은 아이보다 나에게 더 있었다. 3분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문제를 푼 아이는 시간 종료 타이머 소리가 들리면 연필을 탁 내려놓고 미련없이 자리를 떠난다.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내가 남아 이걸 저렇게 해 볼까 저걸 이렇게 해 볼까 코칭을 핑계로 애 쓴 아이에게 칭찬할 시간에 소용없는 작전만 자꾸 세우고 있다.



이것은 물론 나와 우리 아이 사이에서의 이야기이고, 또 이런 생각도 했다. 그 한 두개로 만점을 놓치게 되는 상황이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그땐 아주 가차없어.. 라고 정작 아이만큼 애써서 문제 풀어본 적도 없는 내가 어른인 척 중얼거리고 있다. 세상을 좀 더 살아보고 학교도 먼저 다녀봐서 이러쿵 저러쿵 아이에게 말이 많은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는데 티는 안 낸다. 



본인이 참여하겠다고 말한 대회지만, 그렇다고 매사 웃으며 기꺼이 능동적으로 준비에 임할 수 없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 조바심에 아이를 많이 볶았다. 내가 너라면 이렇게까지 절대 할 수 없었을거야.. 라는 사과와 조바심은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일단 내 마음 안쪽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 며칠 안 남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토요일 아침까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 3시간 운전을 무리없이 해 내기. 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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