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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Feb 22. 2024

김밥은 죄가 없다

김밥의 꽃말은 멀티태스킹

많은 이들이 김밥을 좋아한다. 나 역시 김밥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러나 최근 김밥을 먹다가 체한 적이 두 번이나 연달아 일어났다. 정확히 김밥을 먹은 끼니 후 체를 하니 '나는 김밥과 안 맞는 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김밥 그 자체가 아니었을 것이다.


김밥이라는 음식 자체가 아니라, 김밥을 먹는 '상황'에 문제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딧는 참치김밥




생각해 보면 김밥을 먹는 상황은 대부분 식사시간에 쫓기거나 매우 바쁠 때이다. 혹은 집에 혼자(아기랑..) 있어도 집밥을 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쳤을 때이다.


회사에 다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간지 마감이 있는 화요일이나 마감을 앞둔 월요일,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기사를 쓰거나 책상 앞에서 김밥을 씹은 적이 있다. 이때 김밥을 먹었다는 표현보다는 씹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냥 무언가를 씹고 넘길 만한 것이 필요한 끼니였다.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는 최대한 집밥을 먹으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점심에 '아 김밥이나 한 줄 사 와서 씹으면서 이거, 저거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날이 있다.


10개월에 접어든 아기는 낮잠은 1~2번만 자주신다. 만약 낮잠이 1번인 날에는 점심 낮잠이 마지막 낮잠이므로, 이 시간을 매우 알차게 보내야 한다. 점심 낮잠은 짧으면 30분가량이며 길면 1시간 30분에서 2시간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2시간을 자는 날에는 2번째 낮잠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오전에 아기와 산책을 하며 김밥을 사놓는 경우가 있다. 아기의 낮잠 시간을 치열하게 보내려는 어미의 준비다.


보통 아기가 낮잠을 자면 불이 나게 노트북을 켠다. 집안일은 노트북을 두들길 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신속하게 5~10분만 해놓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이때 너무 깊게 집안일에 빠지면 아기가 빨리 깼을 시(35분 낮잠 시) 아기의 짧은 잠을 원망할 수 있는 건덕지가 생긴다. 그래서 집안일은 5~10분 안에 정말 빠르게, 소리가 나지 않는 일 위주로만 후다닥 한 후 대학원 관련 일 처리,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 올리기, 필요한 행정일을 빠르게 처리한다.


육아휴직 때 역시 회사를 다닐 때처럼 점심시간에 김밥을 씹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이유다.


김밥을 먹는 상황이란 대부분 이렇다.

 



최근 두 번의 김밥으로 인한 체기 때문에 이제는 김밥을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하루 루틴 어플에는 '점심 배달 시켜 먹지 않기' 항목이 있다. 보통 일주일에 4일 정도는 집밥을 해 먹으려고 하지만 하루이틀은 집 주변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 오며 루틴 달성에 실패한다.


아기가 낮잠에서 일찍 깼거나, 다른 행정적인 일을 처리해야 하는 날이거나, 외부 기고 등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김밥을 씹으면서 노트북을 펴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주어진 집중의 시간은 단 1~2시간뿐이니 말이다.  


일이 쌓여있을 때면 김밥을 먹게 된다. 아니, 어쩌면 김밥을 먹고 싶은 날, 밀린 일을 하게 되는 걸 수도 있다. 김밥이 먼저인지 일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김밥에 꽃말이 있다면 '멀티 태스킹'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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