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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Apr 16. 2024

아기의 생일이 아니길 기도했다

4월 17일 새벽 양수가 터졌다

작년 4월 16일, 딱 1년 전. 아기는 예정일이 4일이 지났는데도 나올 기미가 없었다. 당장 아기가 나와도 문제가 없는 날이었고 사실 만삭이 너무 오래 지속돼 하루라도 빨리 아기를 낳고 홀가분해지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 16일.. 오늘은 나오지 말아라, 기도를 했다. 나와 아기가 평생 기뻐하고 기념할 아기의 생일날, 많은 이들이 슬퍼하는 날, 뭔가 기쁘기 미안한 날이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작년에 그렇게 빌었다.


아기는 예정일이 6일 지난 4월 18일 태어났다. 4월 16일이 지난 새벽, 17일 아침 양수가 터져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는데 ‘16일이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17일이 아기의 생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로부터 하루 더 진통이 있다 나올 줄 몰랐지.


4월18일에 태어난 아기.



사실 10주기 전, 5,6,7,8,9 주기들이 지나면서.. 나는 재난을 조금 소홀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다시 재난들을 떠올리는 일들이 많아졌다. 아기가 너무너무 이쁜데, 동시에 괴로웠던 이유가 바로 나의 불안 때문이었다. 육아의 힘듦보다 나는 그 불안 때문에 더 괴로웠다. 혹시나 아이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난 어떡하지, 그런 불안들은 각종 뉴스를 보면 더더욱 증폭됐다.


육아휴직 1년 반, 어쩌면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기인데 아기가 예뻐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머리가 크고 난 후 이 정도로 철저하게 뉴스를 끊은 적이 없기도 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그 정도로 뉴스에 과몰입을 하고 화를 내고 불안해하기에 동시에 뉴스를 매일 보는 사람이 됐고 직업 기자가 됐지만, 동시에 이는 나를 너무나 괴롭게 하기도 했다. 뭐든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게 하기 마련이다.


여하튼 아기의 이쁨과 함께 뉴스를 완전히 끊은 1년 반 동안 나는 가장 행복한 시기를 지내고 있다. 작년 ‘오늘만은 아기가 태어나지 않길’ 생각했던 때가 벌써 1년이 지났고 나는 아기의 돌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아기와 함께 1년을 지내고 보니, 재난으로 아이를 잃은 사람들, 아니 그냥 아기를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무서움과 불행이 나의 불행한 죽음 같은 상황이었는데 이것이 아이에 대한문제로 바뀌었다.


모두가 아는 사고로 아이를 떠나보냈든, 다른 사람은 모르는 사고로 아이를 떠나보냈든, 아이가 떠나고 나서 인생이 바뀌어버린 많은 부모들을 떠올린다. 나같이 최소한의 도덕만을 따르고 사는 시민이라도, 적어도 자식 잃은 부모를 조롱하거나 가엽게 여기지 않고 사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 생각한다. 이것은 정치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잘하는 시민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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