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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Apr 23. 2024

이슬아 작가처럼 쓰는 8가지 방법

에세이 ‘끝내주는 인생’을 통한 작법 분석

올해 초였던가, 갑자기 뒤늦게 이슬아 작가책을 여러 권 후루룩 읽은 적이 있다. 사실 이슬아 작가 탄생(?) 후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다가, 정말 재미있긴 하지만 읽으면서 무언가 '나까지 벌거벗는 느낌이다..'싶어 읽기를 그만뒀다. 작가의 생각도 그랬지만 작가의 친구들의 실명과 대화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그 노출의 깊이가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 친한 친구가 너무 깊은 이야기까지 나에게 해버리는 느낌이랄까. 관음증 같은 느낌으로 듣는 재미가 있기도 했었지만, 동시에 거부감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문장 쓰는 것은 정말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간 이슬아 작가를 읽지 않은 이후 그는 너무나 인기 대작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홍대병을 앓는 나이기에 몇 년 동안 인기 있는 콘텐츠를 읽지 않고 있었다.


그를 다시 읽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이슬아 작가의 '아무튼 노래'가 있었고, 며칠 후에는 서비스 중단이 된다기에 '한번 읽어볼까' 싶어 다시 그의 글을 읽었다. 내 기억보다 훨씬 재밌고 웃기고 깊이가 있었달까, 몇 년 사이에 더 큰 성장을 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의 최신작들을 샀다.




이번 글은 이슬아 작가의 최신작 에세이 '끝내주는 인생'을 위주로 분석해 본 이슬아 작가의 작법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글쓰기 작법 읽기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꿀팁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시작해 보겠다.


1. 친구에게 말하듯 쓴다


이슬아 작가는 드라마처럼 자신과 친구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늘어놓거나, 실감 있는 대화형식을 그대로 쓰는 방법을 자주 쓴다. 마치 친구와 대화를 할 때 녹음기를 틀어놓고 녹음을 한 다음, 그것을 글로 푸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기에 그가 드라마 작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끝내주는 인생'의  '그랜드 도터'라는 글에서 보여주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 글은 "옛날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저보다 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라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슬아 작가의 증조할머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쓰면 작가가 나에게 말을 하는 것처럼 읽혀서 금방 읽히기도 하고, 작가 역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쓸 수 있기에 조금 수월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이슬아 작가의 친척들에게 증조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식으로 글이 진행되고, 특히나 구술적인 글쓰기 방법을 활용한 챕터이다.


집에 와보니까 어머니가 두꺼운 이불을 몸에 돌돌 말고서는 마강에서 햇볕을 쬐고 계셔. 너무 추우시댜. 한여름인데도 오들오들 떠시는 겨. 무당헌티 왜 이제야 왔냐고 성을 내셔. 무당이 이제 걱정 붙들어 메라고 하더니 부엌에 가서 준비를 햐. 그렇게 일주일이나 굿을 한 겨. 사흘째 되던 날에 무당이 그랴. 어머니는 신을 받아야 된댜.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65p)


마치 교과서에서 할머니들의 구술사를 다룰 때 배우는 것처럼, 그렇게 글을 썼다. 이 책 말고도 이슬아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에서도 이슬아 작가의 친구로 유명한 하미나 작가를 독자로 택한 듯, '하마야, ' 같은 부름으로 시작하는 글이 많다.


최근 산 그의 책들.


2. 일명 TMI, 깨알 정보를 준다.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깨알 정보가 많다. 역사적 사실이나 단어의 어원이나 재미있는 유래 등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1919년에 자신의 증조할머니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쓴다.


"고종 황제가 죽고 전국에서 삼일운동이 일어나고 유관순 열사가 체포되고 독립신문 창간되던 1919년에도 태어날 아이들은 힘껏 태어났을 텐데요.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난 고순남 씨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62p)


나의 증조할머니 고순남 씨는 1919년에 태어났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쓸 수 있는 내용을 이렇게 풀어쓰는 것이다. 혹은 이런 문장.


'팬텀 스레드'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꿰맨 흔적 없는 천사의 옷처럼 귀신같은 솜씨를 뜻하는데요. 바느질 티도 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무언가를 보고 어른들은 귀신의 재주라고 말하기도 하죠. 저는 이 노래를 꼭 증조할머니 순남 씨의 영혼이랑 같이 만든 기분이 듭니다. 무섭지 않은 귀신으로 제 마음 한구석에 앉아 계신 순남 씨. 굿이 기도의 일종이라면 이 노래가 저의 작은 굿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71p)


팬텀 스레드라는 단어에 대한 깨알 정보를 주고, 또 그를 활용해 처음 증조할머니가 신을 받은 이야기와 자신이 만든 노래를 이어주는 이 문장. 이 문장을 읽고 '와 정말 잘 쓰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친구를 껴안고선 괜히 영월의 한자를 알려준다. "편안할 영에 넘을 월이야. 영월로 오는 길이 옛날엔 더 험했나 봐. 산 넘고 강 건너느라 고생이 많았을 거야. 부디 안녕히 넘어가시라는 이름을 지었을 정도로... 이 지명이 꼭 기도하는 이름처럼 느껴지지 않아?"
친구는 고개를 끄덕인다. 고난을 알아서 소망도 알게 된 사람이 지은 이름 같다고 말한다. 수많은 태풍의 이름들처럼 말이다. 개미, 매미, 나비, 소리, 고니... 소망하는 마음으로 지어서 대상과 반대의 성질을 지니게 된 이름을 떠올린다. 생의 험한 면을 본 이들은 그런 작명을 한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82p)


이 부분을 읽으면 영월의 한자도 알게 되고, 태풍의 이름을 순하게 지나가라는 뜻으로 저렇게 짓게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두 가지 부분을 엮은 것도 탁월한 솜씨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유용하고도 유려한 글은 읽는 재미가 있다.


3. 정치적 올바름도 한 숟가락 넣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뒤틀기도 한다.


이슬아 작가가 잘 쓴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가 굉장히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왔기에, 동시에 도덕적인 이야기를 쥐락펴락하는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가 경향신문에 쓰는 칼럼을 몇 번 읽어봤는데 채식이나 기후위기, 페미니즘에 대한 글이 많았다. 사실 그런 글들은 꼭 이슬아 작가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신문 칼럼에서 채취할 수 있고 내 주변에도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신선한 글은 아니었다. 또한 그런 올바른 글은 올바를 수는 있지만 재미까지 있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 도덕 교과서가 그러니까. 물론 그런 글들은 재미로 읽는 것은 아니긴 하다.


여하튼 경향신문 칼럼 때문에 그에게 올바른 말을 하는 이미지가 강하게 덧붙여 있었는데, '꽉 막힌 작가는 아니네'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들이다. 책 ‘끝내주는 인생’ 프롤로그 '노인들은 굽어 살핀다'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프롤로그는 이슬아 작가의 강연장에 찾아온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와가지고 여기 앉아서 작가님 얘기를 흠뻑 들었어요. 꽃구경만치 재밌어가지고요. 나는 정말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작가님이 결혼을 할까? 아이를 낳을까? 엄마가 될까? 그런 게 너무 궁금해요 나는."
사람들이 웃고 나도 웃는다. 그런 질문을 삼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한테 장난스레 여쭤본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있지만 나는 눈시울이 벌게져 버린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28p)


물론 이 부분만 가지고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쥐락펴락했다고 말하기는 조금 빈약하지만, 사실 할머니의 질문을 듣고 누군가는 이슬아 작가의 뒷말처럼 '아니 이 시대에 무슨 결혼을 하라 마라야'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작가 역시 이런 질문을 듣고 '아 역시 노인의 질문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질문에 눈시울을 붉히고, 그 이야기를 곧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계속 달라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할머니가 그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저 질문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게 만드는 문장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을 다르게 만듦에도 그 문장들은 매우 부드러웠다. 그래서 그가 잘 쓰는 사람이라고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완전 착한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겠다. 첫 번째 에피소드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라는 글인데 친구가 사기를 당해 슬퍼하고 있는 걸 위로하다가 드는 생각을 썼다. 이슬아 작가는 사기당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눈물 대신 하품이 났다. 친구의 사정은 슬펐지만.. 슬픔도 지루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34p)


이 부분 외에도 '창작과 농담'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데 굉장히 예민한 문제임에도 부드럽고 재치 있게 풀어나가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또 4번째 특징으로 확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열심히 읽은 흔적.


4. 올바름과는 또 다른, 진심과 사랑스러움이 있다


책 '창작과 농담'에는 새 소년 황소윤과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황소윤이 페미니즘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가사를 쓰지는 않는다, 그러면 재미가 없어진다고 말하고 나서의 이야기다.


조금 유명해졌을 때부터 익명의 독자로부터 가끔 들었던 말들이 있어요. '페미니즘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 혹은 '영향력 있는 여성 창작자가 되었는데 왜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

그냥 저는 몹시 어리석고 약하고 모르는 게 많은 사람이에요. 뭔가를 단언하고 주장하는 게 너무 두려운 사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좋은 것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일단 건강해야 하고요. 제가 이 땅에 태어나서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고 사랑하고 일을 계속해나가는 것 자체도 페미니즘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이슬아 '창작과 농담', 44p)


나는 이러한 이야기가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주장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고 깊게 다가온다고 생각한다. 침범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이 시대에 결혼과 자식을 낳아보면 더 재밌다며 침범한 북토크의 할머니처럼 말이다.


끝내주는 인생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 말도 마찬가지다.


하루는 선생님에게 묻는다. 제가 하나하나 관여해서 혹시 피곤하시느냐고. 선생님은 대답한다. 정성과 예의를 갖추는 선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침범해야 한다고. 사랑이란 본래 그런 것이지 않느냐고.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222p)


5. 비유-개념 이어 붙이기, 수미쌍관을 잘 이용한다.


이슬아처럼 쓰는 법 2번에서도 언급했듯 이슬아 작가는 비유를 매우 잘 쓴다. 영월이라는 한자어를 두고 '편하지 않은 대상에 편하라라는 기원을 담아 이름을 붙인다'는 특성을 태풍과 이어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영월과 태풍을 이렇게 이을 수 있겠는가.


탁월한 이야기꾼들의 공통된 특성은 잘 달라붙지 않을 것 같은 두세 가지 다른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이다.


진하의 등을 쓰다듬는다. 그는 황홀하게 탄식하며 잠에서 깨어난다. 어제의 나처럼 무력한 얼굴이다. 갓 태어난 것처럼 약해 보인다. 사랑도 우정도 실은 번갈아 가며 아기가 되는 일인지도. 나를 어떻게 할지 너에게 맡겨 버리는 일인지도. 자신을 돌 볼 특권을 서로에게 바치는 동안 우리 인생은 지극히 타의 주도적으로 흐른다. 나는 그의 손 안에서, 그는 나의 손 안에서 마음껏 어려진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122p)


문장 자체도 뛰어나지만 사실 다른 글들에서 무슨 이야기를 한 다음에 '인생도 그렇다', '요리도 그렇다', '사랑도 그렇다' 이렇게 뛰어넘어가는 식상한 비유를 볼 때면 재미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글에선 그런 식상함이나 억지스러움이 없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아이들은 어른들 곁에서 노는 걸 좋아해요. 혼자 놀 때조차도 어른이 느슨하게 지켜봐 주길 바라거든요. 적어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렇죠."
내가 중얼거린다. "꼭 작가들 같네요."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203p)


아이들이 혼자 놀면서도 어른이 쳐다봐주길 바라는 욕망을, 작가의 그것으로 이어버린다.


6. 매우 매우 구체적으로 쓴다.


이슬아 작가는 매우 구체적으로 쓰는 것으로 유명해진 것 같다. 달리 말하면 매우 솔직하게 쓴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 작법을 다룬 그의 책에서 자신에 대한 '솔직하게 쓴다'는 평에 대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솔직하게 쓰기란 쉽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는 가게 이름, 지명, 사람 이름, 사람과의 대화, 역사적 사실, 장소 등을 매우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쓰지 않아도 되는 것도 그렇게까지 쓴다. 이 부분은 많은 이들이 이슬아의 글이라고 하면 맨 처음으로 떠올리는 것이므로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7. 자기 계발적이기도 하다.


이슬아 작가가 매우 성실한 일꾼이라는 것은 그의 책 어느 면에서 나 나타난다. 창작과 농담 책에서도 나오듯 그는 학생 시절부터 기숙사에서 다른 친구들을 깨우는 역할을 맡을 정도로 성실한 성격인 것 같다. 운동도 매우 열심히 하고 루틴도 잘 지키려 하는 모습이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갓생 라이프'인 것 같다. 이런 그의 성격이 글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런 자기 계발적인 면모가 그의 글을 읽으면 유용하다고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런 특성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을 때도 자주 느꼈던 것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작가에게 매력이 있어야 글도 잘 읽히는 법이다.


진정한 일꾼들은 늘 소리 없이 많은 일을 끝내놓는다. 엄살도 생색도 없이 다음 일을 향해 간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78p)


나에게 사랑은 기꺼이 귀찮고 싶은 마음이야. 나에게 사랑은 여러 얼굴을 보는 일이야. 사랑한다면 그 모든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부지런해지고 강해져야 해.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131p)


"주간지에 보낼 원고를 마감하는데 아무래도 쓰레기를 쓰고 있는 것 같아."
나는 이야기를 듣고선 이렇게 이야기한다. 쓰레기를 쓰레기라고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자기 객관화된 안목에 감사하자. 그걸 알아봤으니 다음에는 더 좋은 원고를 쓸 수 있고 얼마나 좋으냐.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206p)


8. 감성을 건드리는 문장도 필수다.


뭐 이것저것 이슬아 작가가 왜 글을 잘 쓰는지 설명해보려고 했지만, 일단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다. 문장을 잘 쓴다. 문장을 잘 쓴다는 것은 한두 문장만 읽어보아도 바로 와닿는 일이긴 하다. 이런 문장들을 보면 그렇다.


이럴 때일수록 데이트를 하면 어떨까. (...) 내게 반해 버린 타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 남의 힘을 빌려서 겨우 자신을 사랑하는 일. 그런 구원이 좋은 연애에서는 일어난다.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35p)


2021년, 삼십 대의 내가 영월로 휴가를 혼다. 이번에는 차를 몰고 혼자 온다. 유일하기 때문에 저절로 최고가 되는 것들이 영월에는 있다. 하나뿐인 문학서점. 하나뿐인 서점 주인. 읍내의 하나뿐인 영화관.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76p )


연락이 없는, 입을 꾹 다문, 혹은 먼저 잠들어버린 연인의 옆자리. 그곳에서 친구와 나는 서로를 떠올리곤 했다. 너도 나처럼 잠 못 들고 있을까. 이보다는 뜨거운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까.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81p)


유년기를 돌아보다가 어떤 일이 좋은 일이었는지 안 좋은 일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될 때가 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은 사실 하나니까.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85p)


이렇게 책 '창작과 농담'과 '끝내주는 인생'을 위주로 이슬아작가처럼 써보는 방법들을 알아보았다. 사실 이슬아 작가 책에서 좋다고 표시해 둔 부분을 기록으로 남겨두기 위해 쓴 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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