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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Dec 01. 2023

에세이를 시도할 용기

책 ‘에세이 만드는 법’ 리뷰

육아휴직을 하면서 브런치에 에세이를 써왔다. '시도하다'라는 에세이의 어원을 알아도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게 에세이라는 장르인 것 같다. 에세이라는 장르가 그렇지 않은가. 사실 내가 쓰는 글의 정체가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계속 있었는데 지난여름 브런치가 ‘크리에이터’ 제도를 운영하면서 나를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로 정했다. 이를 보고 ‘내가 쓰는 글은 에세이 분야구나’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여러 종류의 에세이(?)를 올리면서도 여전히 내가 쓰는 글은 무얼까에 관련한 여러 가지 의문들에 이 책은 꽤나 명쾌한 답들을 내준다.



우선 저자 이연실은 문학동네 편집팀장으로, 책 내용을 보면 에세이를 주로 편집하는 편집자이다. 특히 이슬아 작가의 에세이나 김훈, 김이나, 임경선과 요조 등 에세이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의 책들을 편집했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도 편집했다.


이 유명한 책들을 편집한 이야기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저자 소개. 사진출처=밀리의 서재 전자책.


책을 읽으면서 유명한 책들을 편집한 이야기가 대단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유명한 사람들과의 작업기를 읽으면서 ‘역시 에세이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 써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읽다 보면 책 뒤쪽에 편집자로서 유명한 사람이나 문장력이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 있다.


다만 매우 유명한 사람들과의 작업기에 비해 어떤 신인을 발굴해 어떤 작업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분량이 적어서 조금 아쉽긴 했다.



아무리 이름 없는 신인 작가이고 소재는 마이너 하며 다소 괴상한 내용일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연이어 떠오르는 원고가 있다.

띠지 카피도 떠오르고 기똥찬 제목도 머릿속에 지나간다. 재미난 광고 문안과 굿즈, 이벤트가 연달아 떠올라 혼자 히죽거린다. 다른 사람이 뜯어말려도 ‘팔 수 있겠다’는 신호가 온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누구에게라도 이 작가와 이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열의’에 가까운 것일지 모르겠다. 이런 원고를 만나면, 나는 판을 키워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계약서를 꺼내든다.


이 책은 내가 에세이를 쓰면서 ‘내 이야기는 너무 시시콜콜해, 이런 이야기를 도대체 누가 읽을까?’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하면 그 시시콜콜함을 팔리게 만들 수 있겠니?’라고 질문을 변경해 주었다.



하이라이트 50개가 쌓였다.

그만큼 저자는 에세이에 진심이다. 에세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우습게 보거나 편견을 가진 부분에 대해 정면으로 돌파한다.


특히 많은 이들이 에세이는 제목발=즉 내용은 별게 없는데 제목에 낚였네,라고 하는 말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공감 갔다.


사람들은 이런 책들을 두고 간단히 ‘제목발’이라고 깎아내리길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제목발’ 받은 베스트셀러를 결코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는다.
편집자는 익명의 독자가 내가 만든 책을 당장 집어 들어 펼쳐 보도록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개성 있고 임팩트 있는 제목은 그들을 목적지로 곧장 실어 나르는 급행열차와도 같다.


나아가 팔리는 에세이를 폄하하는 시선들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이라는 말에 불편과 반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 것이다. 흔히 대중문화나 트렌드 속에서 대중은 갈대처럼 유행과 미디어에 휘둘리고 다소 경박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내가 편집하면서 늘 최종적인 독자로 가정하는 대중이란 지극히 보통의 취향과 삶의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다. 숙련된 독자가 아닌 사람, 책을 반드시 읽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 심오한 지식과 미학보다는 즉각적인 재미와 감동·위로가 당장 필요한 사람, 책값 15,000원을 낼 형편은 되지만 책 보다 재밌는 것도 많고 돈 쓸 데도 많아서 서점에서 지갑을 여는 데는 제법 깐깐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를 포함해 모든 출판인과 작가들은 철저히 숙련된 독자에 속하므로, 이들 평범한 대중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가서려면 아주 많은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책은 에세이를 비롯해 나아가 누군가는 실제로 하지도 않으면서 쉽게 여기는 일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야말로 '에세이'(에세이의 어원은 프랑스어 ‘에세(Essais)'에서 왔다. 에세의 동사형 essayer는 ‘시도하다’라는 뜻이다.)의 정신이다. 


에세이라는 소재를 넘어, 뭐랄까 세상을 냉소하지 말자는 저자의 삶의 태도를 보는 것 같았다.


미디어와 셀럽, 유행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받는 이 에세이 시장을 너무 쉽게 냉소하지 말고, 우리가 책을 팔아야 할 상대인 대중의 취향을 끝없이 탐구하며, 좋은 에세이가 될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완성하고 싶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고, 언젠가, 곧, 이 편집자가 말하는 좋은 기획을 가진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라는 장르에 대한 자신감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며 좋은 에세이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팁도 많이 얻었다. 물론 아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르지만.. ㅎㅎ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 어쩌면 이 책에서 보여준 저자의 태도를 하나로 요약할 수 있는 문단을 꼽아본다.


에세이는 흔히 ‘잡문’이라고 불리곤 한다. 처음엔 나의 장르를 ‘잡문’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을 보면 모멸감이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정여울 작가님이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타인이 에세이를 ‘잡문’이라 부를 때는 이 장르를 가볍게 보는 편견이 들어 있을 것이나, 스스로 나의 장르를 ‘잡문’이라 말할 때 그것은 자기 비하도, 겸손도 아닌 단단한 자신감이 된다고.

‘잡스럽다’는 것은 반듯하게 그어진 경계나 선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성이라고.


이 책을 읽고, 잡스러운 나의 글들을 꾸준히 더 써야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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