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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Apr 29. 2024

욕망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것이 기만하는 것보다 세련됐다

정아은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리뷰

육아휴직 중 기사가 아닌 에세이를 써보면서, 깨달은 것이 몇 가지 있다.


나는 지금까지 기사를 쓰면서 먹고살았는데, 이 일이 '글로 먹고산다는 것'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분명하지만 내 생각을 담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님도 분명했다.


물론 내가 속한 매체의 특성상 속보를 쓰거나 현장 1보를 쓰거나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기사를 거의 쓰지 않고, 기사를 발제할 때도 기자의 재량이 큰 곳이긴하다. 그렇기에 '내 기사'는 어느 정도 '나의 글'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사의 특성상 '지금 당장 이슈인 사안'이어야 하며, 아무리 내 생각이 강하게 있는 이슈라 할지라도 남의 말을 빌려 써야 하는 '형식'이라는 게 존재했다. 가끔 기자들이 기자들의 생각을 담은 기자수첩을 쓰긴 하지만 그런 글을 쓰는 날은 그렇지 않은 글을 쓰는 날에 비해 매우 드물다. 또한 가끔은 내 생각을 밝히고 싶지않은 사안에 대해 생각을 밝혀야함으로 기자수첩의 경우도 달갑지 않은 경우가 있다.


나는 일상을 살면서 떠오른 생각이나 읽은 책에서 얻은 새로운 정보와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역시 이런 글은 돈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육아휴직동안 자유롭게, 돈이 안 되는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을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돈이 되는 글의 형식은 정해져 있다. 기사라든가 시나리오라든가.

              돈이 되는 글의 형식이 아닌, 예를 들어 에세이가 돈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나 자신이 유명인사라든가 (손웅정처럼), 매우 전문적인 영역을 건드린다던가 (뇌과학이라든가 의학, 미술사, 건축 등.. 이런 부분은 기사와 비슷한 조건), 남들이 관심을 가질 만큼 굴곡진 인생을 살았든가, 혹은 진짜 끝내주는 문장가이든가.             


이것을 깨달으니 그냥 꾸준히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에세이로 먹고살 길을 궁리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휴직을 마친 후 기자로 돌아가 돈이 되는 형식의 글(기사)을 낮에 쓰고, 밤이나 휴가 때 짬짬이 쓰고 싶은 걸 써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금이야 내 고민을 이렇게 정리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작년과 올 초까지는 에세이를 쓰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서 (여전히 지금도 부럽긴 하다) 글을 써서 먹고 산다는 노하우를 담은 책들을 엄청나게 읽어댔다.


그 가운데 매우 솔직하게 쓰셔서 재미있게 읽은 정아은 작가의 책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를 리뷰해 본다.



출간 작가여도, 상을 받은 작가여도 '투고 거절메일' 받고 좌절한다


정아은 작가는 이미 책을 여러 권 출간했고 큰 상도 받았음에도 여전히 작가로 먹고 살기는 어렵다고 고백한다.


책 앞부분에는 이미 출간작가임에도 여전히 원고 '투고'를 하고, 그 투고가 거절당하는 사례를 썼는데 매우 솔직해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이었다.


문학상을 받은 뒤 장편을 세 권 출간하고, 그로 인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은 나는, 글쓰기는 그런 명예와 속세적 영광을 얻을 때만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기쁘나 슬프나, 원고에 대한 거절 메일을 받으나 받지 않으나, 마음을 언어로 옮기고 싶어서 환장하는 것, 그게 글쓰기의 본질이었다.
(정아은,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작가는 투고 거절 메일을 받고 생각보다 더 충격을 받고, 글쓰기에 회의를 느낀다. 내 글쓰기를 가장 방해하는 생각 중 하나인 '이걸 써서 뭐 하게?'라는 생각은, 쓰는 사람 거의 모두가 할 것 같은데,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 상도 받고 여러 책을 출간해도 글을 쓰는 것은 또다시 출발선에 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정아은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나에게 '글쓰기'를 좀 더 장기전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줬다. 


이렇게 써서 뭘 하려고? 누가 출간해 줄 줄 알고? ‘운명의 거절 메일’을 열어보던 순간의 쓰라림은 기세를 잃지 않고 등장해 의심의 안개를 뿌렸다. 허리 아프게 하염없이 앉아서 몇 개월을 바치면 뭐 하나. 아무도 출간해주지 않을 것을. 누구도 읽어주지 않을 것을.

회의감이 치솟을 때면 이렇게 응수했다. 아무도 출간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중요한 건 내가 쓰고 싶다는 거야. 쓰고 싶은 마음을 내가 이겨내지 못하겠다는 거야.




내 욕구를 인정하고, 그것에 다다르려 노력하는 것이 욕구를 기만하는 것보다 세련됐다.


공감이 갔던 부분은 글을 쓰고 싶고, 그 글로 인정을 받고 싶고, 막 대작가가 되고 싶고 이런 욕망들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언급하는 점이다. 욕망을 부정하지 말고 제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종종 '내가 쓰고 싶으니까 쓰는 거지~'하면서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말자는 식의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보다 자신의 욕구를 잘 인정하고 노력을 하자는 제안은 내가 평소에도 자주 하던 생각이긴하다.


우리네 사피엔스 종은 모두 인정욕구를 타고 태어난다. 신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이러한 욕망을 장착해 세상에 내보냈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를 존속시키겠다는 욕망은, 폼 나게 잘 존속시켜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은, 절대로 꺼뜨릴 수 없고 꺼뜨려서도 안 되는 ‘생명체의 핵심 욕망’이다. 내게도 있고 네게도 있는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보다 근사하게 실현시킬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더 세련된 대응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거짓을 쓰지는 말자고 강조한다.  


혹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근거가 불분명한 주장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독자를 가르치려 들고 있지 않은지, 내가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일을 소리 높여 같이 하자고 부르짖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체크해야 한다. 인정욕구를 제대로 만족시키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욕구를 인정하고, 그것에 다다르려 노력하는 것이 욕구를 기만하는 것보다 세련됐다.

또한 욕구를 기만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덧. 글로 먹고사는 일로 낸 또 다른 책 리뷰를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로.

네이버 책 인플루언서 '꿈꾸는 유목민'님의 책인데 꿈꾸는 유목민님의 글은 좀 더 디테일하고 방법론에 방점이 찍힌 책이다. 정아은 님의 책은 문장 읽는 맛도 더 있고, 낄낄 대면서 공감할 문장도 많은 편이다.

https://brunch.co.kr/@after6min/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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