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습 식물 살리기 첫 도전
우리 집에는 작은 야자 화분이 있다. 식초보라 테이블인지 아레카인지 이름도 모르고 그냥 부엌 한 구석에 처박아두었다.
사실 이 야자는 반려용, 감상용이 아니다. 냥님들에게 바쳐진 제물이다. 어디선가 고양이들이 야자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끔 생각나면 절화를 사러 가는 김에 작은 포트 하나씩 사다 주고, 다 뜯어먹고 나면 버리고는 했다. 풀을 정말 좋아하는 첫째는 야자 화분이 보이면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달려들어 머리채를 몽땅 뽑아버렸다.
이번 화분도 몇 주 전, 다니는 꽃집에서 절화를 구입하며 생각나서 야자 화분의 유무를 물었더니 하나 집어 주신 것이다. 그 집에도 고양이가 두 마리 있어 이미 팔기에는 애매할 정도로 쥐어뜯긴 흔적이 보였지만, 어차피 고양이에게 바칠 용도였기에 크게 상관이 없었다. 값을 지불하겠다는 나에게 한사코 팔 상태는 아니라며 쥐어주셔서 기분 좋게 들고 와 첫째한테 바치고 그대로 잊어버렸다. 들고 온 초반에 두어 번, 물을 줬으려나.
살식마에서 식초보로 거듭나기로 마음먹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고양이에게 몽창 뜯겼지만 그래도 기어코 새 잎을 내는 야자와 세심하게 돌보는 식집사님의 글을 보고서는 그제야 버려진 화분 생각이 났다. 우리 집에 굴러다니는 야자도 어떻게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본 것만 많아진 초보는 갑자기 용감해졌다. 빼짝 말라비틀어졌지만, 식물은 생명력도 강하니까 분명 물 주고 좀만 챙겨주면 살아날 거야!
그런데 막상 집어든 화분은 예상하던 상태가 아니었다. 의외로 무게가 좀 있었고, 흙이 축축했다. 일단 남편에게 질문했다. 너 야자 물 줬니..? 의아하다는 듯 아니?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럼 그렇지, 연구실에 있는 스투키도 물을 말려서 열 가닥 중 두 가닥을 죽여버렸다는 남편이 야자한테 물을 챙겨줄 리가 없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야자가 물을 빨아들이지 못한 것 아니냐고 한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과습 후 뿌리 사망 루트인가...???? 오자마자 물을 잔뜩 주고 고양이가 뜯기 쉽게 테이프를 덮어 감아 고정해 주었는데, 아마 그 때문인 것 같다. 말라서 죽어버린 이파리들을 잘라내며 줄기 단면을 보니 아직 초록색이 남아있기는 한데..
식초보가 지금까지 얻은 과습에 대한 정보 :
1. 화분에 물이 과하면 흙 사이사이에 있던 공기방울들이 사라진다.
2. 공기가 사라지면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세균이 증식하며 뿌리를 썩게 한다.
3. 주로 잔뿌리가 타격을 받는데, 그렇게 되면 식물은 더 이상 물을 흡수하지 못하게 되고 죽어간다.
4. 줄기 단면까지 썩은 식물은 회생 불가능!
5. 단면이 아직 초록인 식물은 회생 가능할 수도 있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식초보가 온라인에서 긁어모은 정보이므로 틀릴 가능성 많음. 신뢰하지 마십시오.)
일단 살려보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최종 행선지가 쓰레기봉지이든, 화분이든 상관없이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일단 죽은 나뭇잎을 다 쳐내고...
흙을 전부 털어내고 남은 흙은 샤워기로 박박 씻어 내렸다. 뿌리끼리 엉켜 있어서 겁이 많이 났지만 밑져봐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적당히 풀어내고 끊어냈다. 여전히 내가 맞게 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상태로 좌충우돌 돌진해 본다. 사진으로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하니 의외로 뿌리가 튼실해서 아직 사망하진 않았나 보다, 살 지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든든하다 내 친구들 ㅠㅠ 하지만 야자 뿌리를 본 적은 없어도 확실히 잔뿌리는 죄다 썩어버린 것 같다. 그 와중에도 간간이 한두 개 새하얗고 가느다랗고 긴 뿌리가 보이는 걸 보니 식물은 정말 대단하다.
집에 남아있던 수경재배용 돌을 씻어서 페트병에 깔고 물을 채운 후, 야자들을 잘 꽂아보았다. 드루이드 선생님들은 대야에 눕혀서 고이 관리하시던데, 경험은 부족하고 살펴야 할 화분이 있는 나에겐 아직 벅차다. 이후는 야자의 생명력에 맡겨보기로 한다.
부디 이 아이들의 종착지가 화분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