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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제 Mar 18. 2023

1. 봄꽃 히아신스와 온라인 식물쇼핑

올 봄, 첫 쓰봉의 추억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그러니까 몇 주 전). 멍하니 카톡으로 날아오는 광고를 심심풀이 삼아 구경하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아이템을 보았다. 봄을 맞아 히아신스 꽃을 집에서 피워보세요~ 뭐 그런 종류의 광고였다. 수경재배용 유리꽃병과 구근, 장식돌을 세트로 판매하는 물건이었는데,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에 나오는 꽃 중 히아신스를 제일 좋아했던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결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화분은 안 키운다며! 라는 내면의 질책에 수경이라 괜찮아~ 이런 변명을 중얼거리며.


배송이 늦는 물건이라 느긋하게 기다려야 했지만 전혀 느긋하지 못했던 나는 일찌감치 배송받은 다른 분들의 후기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예쁘게 꽃이 핀 구근, 꽃을 가득 피우다 꽃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꽃대가 쓰러져버려 슬픈 모습이 되어버린 구근 등 일단 꽃을 본 구매자분들도 계셨지만, 뿌리가 죄다 끊어지는 등 상태가 좋지 않은데 식물이기 때문에 교환이 불가능했다며 좋지 않은 후기를 남기는 구매자분들도 계셨다. 특히 중간이 오목한 꽃병에 구근이 안착해서 뿌리만 물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제품이었는데, 구근이 작아 꽃병 속으로 빠져버린다는 말이 많아 나도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긴 기다림에도 끝은 있는 법. 3월 초, 드디어 택배가 도착했다. 두근두근하는 가슴을 안고 택배 상자를 개봉해야 했을 텐데, 난 이미 걱정 한가득인 채로 급히 박스를 열고 있었다. 보라, 분홍으로 색상별 한 개씩 구근을 구입했는데, 포장을 뜯어보니 절반의 성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라색 구근의 뿌리도 어지간히 잘려나갔지만, 몇몇 긴 뿌리가 다행히 잘 버텨주었다. 구근의 크기도 (그 당시엔) 유리병에 잘 거치할 수 있을 만큼 컸다. 그런데 문제는 분홍색이었다. 뿌리가 남김없이 잘려나갔고, 심지어 구근이 작아 유리병 속에 퐁당 빠져버렸다. 그리고 두 구근 모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일단 침착함을 되찾고 고객센터에 문의를 넣었다. 문제가 하나라면 어떻게 해결이라도 하겠지만, 예쁜 제품을 사보겠다고 나름 비싼 값을 지불했는데 결과물이 이렇다는 건 너무 속상했다. 다행히 그동안 무슨 프로세스의 변화가 있었는지- 그전에는 식물 특성상 개체 차이가 있고 키우면 잘 클 거라며 교환해주지 않았다는 판매처는 매우 친절하게 응대하며 빠른 속도로 재배송 처리를 해주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 구근도 키우면 정상적으로 클 거라는 안내도 같이 해주었다.


히아신스 3자매

어쨌든 다들 나름 제 집을 찾아갔다. 새로 배송받은 구근은 중간이 갈라져 있기는 했지만 구근 크기는 제일 튼실했다. 여전히 뿌리는 우수수 잘려나간 상태이지만 적으나마 몇 가닥 긴 뿌리가 남았다. 곰팡이를 씻으면서 제일 바깥쪽 껍데기는 전부 물러 떨어져 나갔지만, 크게 문제는 없다고 했다. 이제는 꽃을 볼 일만 남았다. 누군가 양파쿵야라는 감상을 남겨놓았던데, 너무 찰떡이라 한참을 웃었다.


빠른 속도로 자라는 히아신스. 다들 잘 자라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의외로 뿌리가 없는 구근이 제일 먼저 꽃대를 올리고 꽃을 피워냈다. 보라색 구근은 꽃대가 높이 올라오기도 전에 성급하게 꽃을 피워낸 데다, 어느새 구근이 줄어들어 물속으로 빠져버렸다. 차라리 일찌감치 빠졌으면 재배송이라도 받지, 이젠 뭐 어찌할 도리도 없다. 호일을 끼워서 어떻게든 띄워두었다. 그래도 크게 손대지 못할 정도의 문제는 없었다. 이대로만 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역시 뿌리 때문인지, 아니면 구근이 부실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분홍색 1호의 잎이 누렇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직 나오지 못한 꽃대가 밑에 하나 더 있었는데, 꽃대를 올리기는커녕 제법 피었네 했던 꽃도 상태가 나빠졌다.

모두 건강했으면 좋았을텐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부실한 상태로도 분홍색 1호는 잘 버텨 주었다. 제법 예쁜 꽃도 보여주고, 꽃이 피기 시작하니 베란다에 은은하게 향기가 흘렀다. 하지만 그 기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꽃은 금방 시들어버렸다. 하.. 슬프다. 밑쪽에 있던 꽃대도 제대로 꽃을 피워내지 못하고 다 시들시들해졌다. 결국 이 구근은 쓰레기봉지 행이 되어버렸다. 이사 후 첫 살식이었다.

실내로 대피시킨 보라색과 분홍2호 구근

남은 꽃이라도 가까이 두고 좀 오래 보고 싶어서 얼른 실내로 들여왔다. 그냥 보기에도 튼실한 분홍색 2호 씨는 제법 꽃대를 키워내더니, 순식간에 꽃을 피웠다. 꽃도 큼직하고 싱싱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으면 문득문득 향기가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마 당분간 예쁜 꽃을 보여줄 것 같은데, 아래에 꽃대가 하나 더 있다. 진작에 이런 애들로 좀 보내주지, 싶으면서도 얘라도 튼튼하게 잘 자라서 어디냐 싶기도 하다. 보라색 구근도 예쁘게 꽃을 피우긴 했으나, 꽃대가 충분히 올라오기 전에 꽃부터 피워서 그런지 아니면 구근이 튼실하지 못해서 그런지 금방 생기도 잃고 향기도 잃었다. 사실 제일 좋아하는 색이라 참 많이 기대했는데, 얘도 꽃대가 두 개였으면 좋았을 걸.


봄의 초입은 그렇게 히아신스와 함께 했다. 노지에서 월동한 엄마네 히아신스도 하나씩 꽃이 피어나는 중이라고 한다. 히아신스가 봄꽃인 것도, 향기가 이렇게 좋은 꽃인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향이 은근히 강한 편이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다.)


히아신스 판매는 종료되었지만, 이후로도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후기가 드문드문 올라왔다. 온라인 식물쇼핑은 하는 게 아니라는 글도 몇 개 보였다. 어느 정도 동감하는 마음으로 집 근처 꽃집 두어 군데를 들렀는데, 어느 집이고 히아신스 상태가 영... 제일 힘들어하다 초록별로 떠나신 분홍색 1호 씨보다 물론 더 건강해 보이기는 했지만 더 안 예쁘다. 역시 식물은 쉽지 않다 쉽지 않아... 그렇게 오프라인의 사례를 보니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식쇼핑이었는데? (물론 가격 차이가... 좀 많이 있었다...)


히아신스를 들이면서 같이 받은 수경용 장식돌의 양이 많아서 또 수경할 애가 없을까 기웃거리다가 로즈마리를 들이고, 친구들의 꾐에 넘어가 화분들을 몇 개 더 들이게 되면서 대 식초보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 생각하면 얘 때문에 결국 베란다에 식물이 세 들어 살게 되었는데... 수경이라고 해서 대뜸 시작을 하는 게 아니었다 생각하면서도 식물들은 예쁘니까 괜찮아!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어버린다.


온라인 쇼핑은 그 후로 딱 한 번 더 했다. 프로개님 블로그에서 본 이사벨라페페라는 아이가 보기에도 예뻐 보였는데, 식물 돌보기 레벨 0이라는 소리에 깜빡 넘어가버린 것이다. 얼른 판매처를 알아보았는데, 근처 꽃집 어디에도 파는 곳이 없고, 주문을 넣은 꽃집도 주말에 사러 갔다 없어서 그냥 돌아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네이버에서 저렴해 보이는 곳에 대충 주문했는데, 알고 보니 의외로 네임드 스토어였다. 페페는 아주 무사히 도착했고, 줄기가 몇 가닥 꺾여 있었는데 이런 특성의 식물이라면 정말 어쩔 수 없겠다 납득 가는 정도였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온라인에서 식물을 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거다 싶은 애가 오프라인에 없으면? 뭐 사야지 어쩌겠어. 상품을 직접 보고 고를 수 없는 점은 좀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가 이쁘게 키워내면 되니까. (그런 고로 경험치가 쌓일 때까지 당분간 온라인 쇼핑은 금지다. 사실 오프라인 쇼핑도 마찬가지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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