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C Feb 04. 2024

일롭의 일기

A Diary of Elove

1월의 달 밝은 밤에


그는 혼자 보름달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였다. 나는 호텔방을 빠져나와 산책을 하다 그 모습을 보았다. 구름 한 점 가리지 않은 맑디맑은 동그란 보름달이었지만 내게 특별한 건 달이 아니라 그걸 바라보는 일롭의 모습이었다.


내가 일롭에게 다가갈 때까지 보름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내가 그냥 지나쳐가길 기대했었나 보다. '달이 참 맑죠?' 라는 말을 건넬 때 비로소 시선을 돌렸다.


일롭은 이 호텔의 야간 미화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곳에서 보는 마지막 보름달이기에 여느 날과 다른 특별함을 느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1월의 추위와 며칠사이 쌓인 눈 그리고 보름달을 뒤로하고 온기 가득한 실내로 우린 함께 들어왔다. 일롭과 나는 소파에 앉아 뒤의 경치를 앞에 놓고 좀 더 대화를 나누었다.




밤의 청소부


벌써 1년이 지났다. 호텔의 야간 미화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했을 때, 나(일롭)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예스'라고 하였다. 딱히 하겠다는 결심이라기보다 면접이라도 보고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면접을 봤고 나는 크리스마스연휴만 보내고 나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이 일을 시작했다.


미화원이라지만 내가 딱히 무엇을 아름답게 꾸미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1년이 지났지만 내가 어떤 아름다움에 봉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움의 기본이 청결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얼마나 깨끗하게 하고 있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건 내 마음속에 낀 얼룩일까, 내 의식 속에 자욱한 안개일까 자문해 볼 뿐이다.


청소부란 참으로 천한 일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뒤돌아서면 먼지가 안고 때가 끼고 휴지가 쌓이는 이 일을 잠시나마 성취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건 좀 공허하다. 또 어떨 때는 스스로가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열등감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성취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내 직업적 자부심은 결정되는 듯했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르싯으로 출항하는 배에 올라타 도망가려고 했던 요나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당당한가. '너는 호텔로 가서 청소를 좀 해라'라는 명령에 얼마나 순순히 복종했던가.


이제 1년이다. 1년으로 충분하다.




일롭은 '밤의 청소부'로 자신을 소개했다. 이제 누구도 '청소부'란 명칭을 쓰지 않음에도 아름다움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생각에 청소부란 이름이 최소한 정직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 이름에는 부정적으로 비하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음에도 쓰레기를 치우고 먼지를 닦는 기본적인 행위에서 비롯되는 깨끗함의 이미지는 선명하게 살아 있는 듯했다.


일롭은 다음 일과가 시작될 새벽 5시까지 휴식을 위해 그리고 나는 늦은 밤 졸음에 못 이겨 8층룸으로 각자 돌아갔다.


2024. 2. 4. 제7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