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ront of the aiport of Vladivostok
일본인 카오루
일본인 카오루Kaoru를 만난 건 영종도의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도쿄의 회사원인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휴가를 가기로 결정했고, 인천공항에서 환승을 하려고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한국의 전형적인 아파트였던 게스트하우스는 벙크베드 3개가 놓인 방이었는데 카오루와 다른 누군가가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항인근 물류단지에서 일을 하던 때였는데 퇴근하고 돌아온 후 카오루 상을 만났다. 그가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놀랐다. 어떻게 소련땅에 갈 생각을 할 수 있냐는 내 반응은 스스로 생각해도 기괴하기까지 했다. 그많고 많은 나라와 도시중에 하필이면 블라디보스토크인지, 게다가 비자를 받기 위해 지난 2년을 기다렸다며 얼굴에 환한 미소를 보이던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음날 그가 떠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투숙했다며 어느 러시아 주인장과 찍은 사진을 공유했을 때 카오루의 여행이 현실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두세 장의 현지 사진을 더 공유해줬는데 그 자체는 놀라움을 자아낼 정도의 뛰어난 경치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말을 걸지 않았다면 그저 잠만 자고 말없이 체크아웃했을 내성적인 일본인 중 하나였을텐데 그나마 나의 호기심에 응답해준 그의 관심이 고맙게 느껴졌다.
카오루의 블라디보스토크행은 놀라운 사건이었고,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진지한 사건이었다. 그전까지 러시아를 가본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이 사건은 9월 말이었고 불과 1주일 전에 태국에서 한달을 보내고 돌아온 데다 11월 말에는 오사카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도저히 새로운 여행을 시도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이번이 아니면 절대 못갈 거라는 예감이 확실했다.
초대장
10월 첫째주에 블라디보스토크행 항공편을 예약했다. 일단 비행기표는 끊어놨는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 여행만 다니는 팔자좋은 싱글일지도 모르지만 좀 충동적이고 무모한 계획임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던 터라 망설임이 더이상의 계획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시일만 소요되고 있었다.
그런던 어느날 아침 게스트하우스 호스트께서 여자손님과 같이 아침을 먹고 나가라는 말을 듣고 주방에 갔는데 참 재미난 일이 생겼다. 한국인처럼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러시아 아가씨를 만났는데 전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냐Tsenia를 극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모든 심적 장애물들을 일거에 걷어내고 나의 첫번째 러시아행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계획되지 않은 일이 뜻밖에 펼쳐질 때 삶의 우연성에 놀라게 된다. 삶이 훨씬 더 흥미진진해질 것이라는 확신과 또 다시 마주하게 될 설레임에 휩싸이게 된다. 그때 인생은 '문제해결의 연속'에서 '살아야 할 신비'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