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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성 Jun 08. 2022

필요악이라는 사다리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고


"사다리 걷어차기"는 19세기 경제학자였던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만든 개념으로, 당시 선진국이었던 영국의 교역정책에 대해 후발주자인 독일의 입장에서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는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모습은 리스트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선진국들은 경제수준이 낮았을 때 자국의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정책, 특허권들의 지적재산권, 노동시간에 대해 지금의 개발도상국들보다 강력한 보호주의를 실현했고 국내 산업에 대한 특혜를 베풀었다. 그들은 그렇게 선진국이 되었으면서,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 지적재산권의 엄격한 준수, 철저한 노동자들의 권익보호 등을 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내로남불처럼 들린다.


다만 책에서 아쉬운 점은 선진국들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비판적인 점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인 장하준 교수는 경제 거래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경쟁을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는 수정 자본주의에 대한 교훈들이, 왜 개발도상국에 나타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경제학적 이론만 보았을 때, 선진국들의 건전한 제도적 기반이 경제 성장과 잘 맞물렸기 때문에,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성공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세세히 보면 저자의 말도 일리가 있다. 지금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후진국일 때의 역사적 경험을 기억하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러한 접근 자체를 거부한다. 그들은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발표한 이후 줄곧 자유방임주의를 위해 선전해 온 것처럼 왜곡하면서, 그것이 자기들의 성공 비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18세기 영국의 섬유 산업은 유럽 대륙뿐만 아니라 식민지 인도보다도 낙후했었다. 이때 그들은 높은 관세와 수입 금지 처분에 이르기까지 온갖 보호 정책으로 국내 산업을 육성했다.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5달러 지폐에 실린 링컨은 “미국과 같은 후진국의 정부는 관세나 보조금 등을 통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고, 2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잭슨은 “은행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다. 은행은 순수하게 우리 국민이 소유해야 한다.”면서 외국인 소유 지분이 30퍼센트를 차지한 국책은행 허가를 취소했다. 또 50달러 지폐에 등장하는 그랜트는 “영국도 17~18세기에 유럽 산업의 중심지였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따라잡으려고 보호무역을 했다. 우리도 영국처럼 한 200년쯤 보호무역을 통해 산업을 발전시킨 뒤에는 자유무역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즉, 산업혁명 때 보호정책을 썼던 영국과 미국은 성장한 반면, 같은 시기에 극단적인 자유방임을 선택했거나 개방주의 내지 국가 개입을 최소화했던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은 쇠락했다. 앞서 말한 것과 정반대 되는 문장이다. 과연 그들이 선진국이 된 것은 자유무역 덕분인 걸까? 아니면 강력한 보호정책 덕분인 걸까?


나는 그 물음에 대해 사람의 이기심을 언급하고 싶다. 먼저 이기심에 눈뜬 국가는 자본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고, 자유방임주의와 보호정책을 선제적으로, 선택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자본주의를 대체하기 위해 탄생한 공산주의는 사람의 이기심을 생각하지 못해, 자본을 이해하지 못해 몰락한 것이다.


이기심과 자본.

참 악해 보이지만, 그래서 꼭 필요한 사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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