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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금성 May 18. 2022

평등이라는 허구

인간 본성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상황들을 보면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지도층의 부정부패로 인한 몰락과, 평등을 설교하며 시기심과 복수심을 정의로 위장하는 새로운 권력층의 등장. 이는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 타란툴라(평등주의자)와 일맥상통한다.


책에서 타란툴라는 '세계가 우리의 복수심의 폭풍우로 가득 차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의'라고 이야기한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정의 구현을 위해 민주주의 제도를 이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란툴라에 물려 정의의 횃불 아래 의견이 다른 자들을 살육하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마르크스주의라는 평등사상이 다시금 대두되고 있다. 마르크스는 환상과 공상에 물든 종교와 관념 철학을 붕괴시키고 물질적 생산관계를 바탕으로 삼아 인간이 노동의 주인이 되는 과학적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사는 인간과학적 사회주의를 만들 만큼 이타적이고 수준 높은 생명체가 아라는 것을 증명하였다.


또한 노동자와 노동자 간에도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노조와 비노조의 대립 등) 서열(계급)을 정하고 투쟁하는 것은 불변하지 않는 자연법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러한 인간 본성을 이용해서 하나의 안정적 체제를 구축한 것이 자본주의고 생각한다.


물론 자본주의가 백번 옳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의 가치가 퇴색하고 있는 지금, 마르크스가 남긴 유산을 통해 물질적 생산관계에 대한 심각한 고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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