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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하 Mar 04. 2022

해결 과제는 열등감 활용

요가 수련 중 느끼는 열등감에 대해




열등감: 다른 사람에 비해 뒤떨어졌다거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 감정, 의식 (두산백과)




아쉬탕가 마이솔 수련에서 ‘열등감 느끼지 않기’는 모순처럼 느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수련실에 들어가면 비교 대상 천지다. 다른 사람들과 나의 동작 하나씩만 비교해 봐도 잘하고 못하고가 보이고, 선생님께 부여받은 수련 진도 전체를 봐도 길고 짧음이 바로 드러난다. 원치 않아도 상대방과 나는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열등감 자체는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열등감이 발생하면 내 모습이 초라해 보이고 의욕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한들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다. 나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래도 가장 흥미 있고 할 만한 것이 이 수련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마저도 런 식으로 회피한다면 나는 어딜 가서도 회피하면서 살 게 뻔했다. 그럼 나는 아무것도 해낸 것이 없으니 어디서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약체가 될 것이다. 이 악순환은 반복되고, 나는 어느 순간 최약체가 되어, 결국엔 도태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열등감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도 부딪쳐야만 했다.




열등감을 이겨낸다는 건 20년 이상을 보기 싫은 것을 요리조리 피하며 살아온 회피형인 나에게 너무 갑작스레 다가온 해결 과제였다. 그래도 우선은 지금 내 모습이 어떤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별 수 없이 지금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어째 잘난 점이 하나도 없었다. 그 덕에 별로 어렵지 않게 내 수준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 같이 수련하는 도반들에 비해 나는 진도도 느리고, 얌전하지도 않고, 몸이 가벼운 것도 아니고, 내 몸 하나 들어 올릴 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매일 수련한다 한들 다른 사람들처럼 수련이 끝나고 알차게 사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써놓으면 나도 읽기 힘들 정도로 비참하다. 하지만 상처도 낫는 과정에서 더 아프듯이 아주 밑바닥에 있는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견뎌내야만 했다.




이럴 때는 괜스레 심술이 나서는 스스로 유치한 질문을 하게 된다.

"해도 바닥이고 안 해도 바닥인데 굳이 뭣 하려 하냐?"




이런 식으로 약 올리듯 자문하면 상당히 얄밉지만 그래도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하다. 수련해도 바닥이고 안 해도 바닥이라기엔 나만 아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비교 대상을 다른 누구도 아닌 과거의 나로 두면 알 수 있다. 물론 가끔은 어제보다 못한 나를 볼 때는 불쾌하긴 하다. 하지만 오히려 어제 내 생활 패턴이 어땠길래 오늘 수련이 이런 식인 건지 돌아보는 계기로도 삼을 수 있다. 때로는 어제보다 움직임이 훨씬 유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전날 몸이 안 받쳐줘서 제대로 해 내지 못했던 것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와는 다르게, 나와 나를 비교하다 보면 그래도 확실한 타개책이 나온다. 내 상태가 어제보다 좋든 나쁘든, 어제는 느낄 수 없었던 오늘의 내 몸에서 생겨난 새로운 감각이 알려준다. 이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 알 수 있다. 수련하면서 내게 집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것에 눈독 들이다가 내 몸과 마음이 알려주는 나만의 귀중한 신호들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바로 앞, 뒤, 옆에 도반들이 있으니 상대방을 아예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나에게만 관심을 두려고 해도 나보다 대단한 다른 사람들만 보일 때가 있다. 이때, 상대방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꽤 흥미로운 사실을 얻을 수 있다. 수련하면서 나보다 잘난 것 같다고 느껴지는 상대방의 모습은 모두 그 사람의 장점이 된다.




이런 건 대부분 나 혼자 생각하는 데 그치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상대방에게 본인의 장점을 말해줄 때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열등감을 여과해서 간접적으로 표출한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열등감이 클수록 상대방의 장점도 같이 커졌다. 그만큼 내가 그 사람을 존경한다는 의미다. 처음엔 나의 열등감을 상대방에게 표출하는 것으로 시작됐지만, 나중에 보면 그 사람만의 장점이자 개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상대방보다 뒤처진 나는 잊히고, 그 사람의 좋은 점만 남는다.




그리고 의외로 다른 사람들도 수련할 때 나처럼 과거 본인의 모습에서 자극을 받는 편이지, 남들보다 잘났다고 우쭐하지 않는다. 적어도 남을 깎아내리면서 본인을 추켜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히려 내가 상대방의 장점을 언급해 주면 겸손해하기 바쁘다. 어쩌면 상대방은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고 정직하게 성장했을 뿐인데, 무의식 중에 내가 그 과정을 무시하려 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내가 생각을 잘하고 볼 일이다.




어찌 보면 열등감과 존경심은 매우 닮았다. 그럼 이제 나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1번, 이곳에는 내게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많다.
2번, 이곳에는 내가 모범으로 삼을 만한 사람이 많다.


내가 1번을 고르면 상대방은 곧바로 질투의 대상이 된다. 나는 당연히 2번을 골랐다. 그럼 내 주변은 나보다 잘난 사람들로 채워지는 거다. 내가 가장 못났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주변엔 내게 모범이 될만한 멋진 사람이 많을 뿐인 거다. 내 주변 사람들의 총합을, 내가 본받고 싶은 장점의 집합체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유치해도 이렇게 하다 보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데 정신없던 내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열등감은 언뜻 수련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방해 요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열등감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해서 내가 안고 가야 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수련의 도구로 활용해야만 한다. 나는 남들보다 뒤처진 점이 많아서 열등감이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수련 중에 발생한 나의 열등감은 내게 가치 있는 생각과 가치 없는 생각을 분별할 도구로 기꺼이 이용된 것이다. 그래도 열등감을 없애려고 많이 노력한 덕분에 많은 결실을 얻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상대방의 모습을 존중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알게 되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데 집착하면, 그저 남보다 못한 나만 남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은 내 질투심 때문에 나의 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똑같은 열등감을 가지고서 그 사람들을 존경하고 롤 모델로 삼을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종국에는 나를 완성하게 되듯이, 상대방도 내가 해석하는 대로 변하게 되어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주변 사람을 롤 모델로 삼는 건, 사회에서는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기회다. 같은 사람을 두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내 선택에 달렸다.




나를 이루는 것은 내 몸과 마음이지만, 내게 영향을 주는 것은 결국 내 주변이다. 비교대상은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나로 한정해도 충분히 생각할 거리가 많다. 나와 상대방을 비교하면 열등감만 느껴지지만, 나와 나를 비교하면 오히려 내 행동을 자각하고 성찰할 수 있다. 이건 열등감과 반대로 아쉬탕가 수련에서 지향하는 부분이다. 아쉬탕가 수련에서 말하는 '열등감'은 처음부터 느끼지 않아야 할 금기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잘 다루어 더 깊은 생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나만의 필살기이다. 어쩌면 '열등감 느끼기 금지'라는 아쉬탕가 수련의 철칙은 나같이 바닥에 있는 사람에게 내준 은밀한 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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