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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Oct 15. 2023

안녕 나의 포르투 #35

Ep35.│포르투의 마지막 날, 와이너리 투어와 완벽한 마무리



내일이면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 마지막 여행지인 바르셀로나로 떠난다. 오늘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숙소를 떠나 포르투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숙소를 옮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벌써 정들었던 추억 가득한 숙소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마쳤다. 오늘도 잊지 않고 물고기에게 먹이를 준 뒤 숙소에 널브러져 있던 옷들을 배낭 속에 넣고 나자 어느새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정이 많은 나는 방을 나서기 전 문 앞에 서서 잘 있으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나서야 방 문을 열고 나왔다. 집주인아주머니께 이제 떠난다는 인사를 남기고 노랑과 초록으로 가득 찼던 숙소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한아름 담고는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여유롭게 남은 우리는 아침을 먹기 위해 포르투 시내에 있는 포케 가게에 들렀다. 종이에 이것저것 적혀있는 것들을 체크하여 양껏 담고 나니 그제야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온 포케에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욕심으로 가득 담긴 재료들과 소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재료과 소스들이 많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서로 잘 조화롭게 섞여 너무나도 맛있었다.


나온 포케 한 그릇을 다 비워갈 때쯤 배는 터질 듯이 불러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포르투의 일상은 너무 바쁘지도 급하지도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잔잔한 일상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을 마치고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와이너리 투어를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포트 와인으로 유명한 포르투에는 다양한 와이너리가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테일러스 와이너리에 가기로 했다.


어제 왔었던 동 루이스 다리 아래의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올라가니 드디어 우리 눈앞에 테일러스 와이너리가 보였다. 미리 예매한 표를 보여주고 오디오 가이드를 목에 건 우리는 천천히 와이너리 투어를 시작했다.


20살 초반, 친구들과 죽어라 먹었던 소주가 전역을 하고 나자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사실 가족력이 있기도 했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뻘게지는 나는 술이 내 몸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무슨 깡었는지 그저 20대의 패기라고 밖에 설명하지 못했다.


내가 와인을 먹기 시작한 건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였다. 와인도 20살 초반 처음 와인 페스티벌에서 시음하며 접했다. 그때는 시음했던 와인 속에서 특유의 와인의 맛없는 맛이 자꾸 혀를 때려대는 탓에 들고 간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면 입에 대자마자 다시 버리기를 일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 와인은 나랑 안 맞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역하고 친한 형과 함께 오랜만에 와인을 마셨는데, 어라?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사실 이런 느낌을 처음 느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매일 달고 사는 아메리카노를 처음 먹었을 때, 반도 못 먹고 헛구역질을 하며 그날 저녁을 못 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점차 익숙해지고 자주 마시자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나의 소울 푸드가 되었다. 와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와인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나는 테일러스 와이너리의 한 공간을 가득 메운 거대한 오크통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렇게 주원료인 포도의 재배부터 테일러스의 역사까지 목에 걸려있는 오디오 가이드를 듣는 내내 나의 눈과 귀는 동시에 모든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입장권에 포함되어 있는 와인 시음권 두장을 직원에게 보여주니 야외 테라스로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세상에 동물원에서나 보던 공작새가 테라스 이곳저곳을 도도하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보았던 공작새들은 우리에 갇혀 큰 감흥이 없었는데 해외 와이너리 정원에 천천히 걸어 다니는 공작새를 보니 그렇게 우아하고 품위 있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신기하게 동영상을 찍고 있으니 어느새 직원이 다가와 와인 두 잔을 따라 주었다. 나는 너무 당도가 높은 와인을 마시지 못하는데 도수가 조금 높았지만 적당한 당도와 산미가 있어 지금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적절했다.



조금 더 여유를 즐기고 난 우리는 만족스러운 발걸음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미리 봐둔 피자집으로 향했다. 이제는 가게 안 보다 테라스에 더욱 익숙해진 우리는 널널한 안쪽 자리를 뒤로하고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이내 주문한 피자와 라자냐가 나왔고 한참을 먹은 나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고 나서야 젓가락을 놓을 수 있었다.



피자를 먹는 동안 거리에는 어느새 서서히 불빛들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했다. 포르투에게 마지막 인사를 잘 보내주고 싶었던 나는 동원이와 함께 동 루이스 다리 아래의 풍경이 잘 보이는 모루 정원으로 향했다. 어제보다 사람이 많았던 언덕 위에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천천히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던 나는 그렇게 서서히 포르투와 작별인사 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다 지고 하늘에 캄캄한 어둠이 찾아오자 이전보다 이전보다 바람이 더욱 매서웠다. 생각보다 얇게 입고 나왔던 우리는 최대한 버티며 야경을 보다 "이제 가자"라는 말이 동시에 튀어나오자 그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포르투에 대한 조금의 아쉬움과 미련까지 털어내고 싶었던 나는 동 루이스 강 아래를 천천히 걸어가며 다시 한번 인사를 남기고는 동원이와 젤라또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먹으며 숙소로 향했다.


- '꼭 다시 돌아올게. 그때까지 잘 있어. 안녕 나의 포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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