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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래블러 Nov 19. 2023

파도처럼 #38

Ep38.│유난 떨지 않고 보내는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하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아침을 맞이하는 하루였지만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하루였다. 예전 같았다면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쉬움과 그리움에 하나라도 더 바쁘게 움직이고 보려고 아등바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여정에서 이별의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설렘에 집중하기로 한 나에게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유난스럽지 않았다.


단장을 마치고 거리로 나온 우리는 가장 먼저 버스를 타고 입국을 위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병원으로 향했다. 예약한 병원에 무사히 도착해 간호사들과 간단한 대화를 마친 우리는 무사히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몇 시간 뒤 검사지를 받으러 오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는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차분함과 인사를 건네며 들어오는 사람들의 활기가 공존하고 있었다. 크루아상과 아메리카노를 시킨 우리는 따듯한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사람들의 온기와 커피 그라인더 소리를 들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카페 근처 몬주익 성을 향해 걸어갔다. 거리는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구경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보다 가볍게 산책을 하러 온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MBTI가 J인 내가 유일하게 P가 되는 순간이 바로 여행을 할 때다. 나는 여행지에서 이곳저곳 분주하게 다니는 것보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원래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처럼 차분히 일상에 녹아드는 여행을 선호한다. 그렇기에 여행자의 순간에서 만큼은 그 순간에 집중하고자 계획을 빼곡하게 잡지 않고, 잡더라도 충분히 시간적 여유를 두고 여행을 즐긴다. 그래서인지 이미 이곳을 와 본 사람처럼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몬주익 성의 구경을 마치고 병원에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간호사가 음성 결과지를 건넸다. 이미 우리의 메일로도 보냈으니 걱정하지 말고 잘 즐기다 돌아가라는 인사를 건넸다. 웃으며 고맙다는 마지막 인사말을 남기고 우리는 구엘 저택으로 향했다.


그동안 보았던 화려한 가우디 형식의 외관이 아닌 단출하고 정리된 외관 디자인이 오히려 위엄과 무게감을 들게 했다. 입장권을 확인받고 들어간 저택 내부에는 가장 먼저 구엘 저택 모형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이후 마구간인 지하 주차장을 통과해 위로 올라가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에 햇살이 가득 비치고 있었고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인테리어와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었다. 순간 마치 영화 속 귀족이 된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어 눈에 꼼꼼히 담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오르간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소리가 모여 가장 잘 퍼지는 계단 난간에 서 있으니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더욱 풍성하게 들려왔다. 자연스레 잠시 눈을 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그 순간을 한껏 즐겼다.



구엘 저택을 나와 놓칠 수 없는 까사 바트요를 구경하고 나온 우리는 마지막으로 해변가로 향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그곳은 내가 알고 있는 열정 가득한 스페인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모래사장에 앉아 태닝을 하는 사람들과 배구를 하며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자신의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모래를 향해 힘껏 밀려온 파도는 이내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다음 파도를 위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나의 여행도 파도와 같았다. 갑자기 떠나온 배낭여행의 모든 순간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추억들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파도처럼 나에게 밀려온 이번 여행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정의하는 내가 아닌 진정 내가 즐거워하는 순간이 언제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다음 파도를 위해 물러나는 모습처럼 이번 여행을 되새기며 다음 여행이 다가올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가볍게 마트에 들러 조촐하게 여행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로 했다. 우리의 단짝인 납작 복숭아와 마트에서 산 와인 한 병, 그리고 안주인 감자칩이 올려진 테이블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 즐거워하고 감탄하던 여행 첫날 우리의 모습처럼 마지막 순간도 소박하게 우리만의 방식으로 보내기로 했다.


졸졸 소리를 내며 담긴 서로의 와인 잔을 부딪혔다.

- "함께 와줘서 고마워.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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