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0.│여정의 끝에서 새로운 여정을 기다리다.
한 달 반 만에 돌아온 나의 빈자리가 무색하리 만큼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무사히 돌아왔음을 축하해 주는 가족들과 친구들, 하물며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마저도 자신의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동안의 여정에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찬 나에게 들어온 여전한 풍경이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되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여행을 떠나기 전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일상에 다시금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러한 일에 겁먹지 않기로 했다.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 보다 새로운 시작의 설렘에 집중하기.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이다. 언젠가 숨 가빠진 일상에 지쳐 숨을 헐떡일 때쯤 여행의 틈에서 불어오는 살랑이는 산들바람을 따라가 그곳의 일상에서 크게 숨을 들이마시기로 했다.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며 몇 km를 걸었냐는 질문에 780km 중 528km를 걸었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단하다며 나를 치켜세웠다.
그동안의 길을 걸으며 내가 대단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내가 걸어야 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왔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때론 서로 의지하고 응원하며 보낸 일상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저 한국에서의 일상이 있듯이 그곳에서의 일상을 잘 지냈을 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여행을 가서 몇 백 km를 걸은 그때의 나도 물론 대단했지만, 여행 전 그동안의 일상을 즐기고 때론 견디며 잘 버텨주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이미 충분히 스스로에게 대단하다고 칭찬해 줄 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절대 나만 그렇지 않다. 오늘만큼은 이제까지 잘 견뎌온 스스에게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분명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다신 오지 않을 오늘이라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그 순간들이 모여 추억을 만들고 내일을 살아갈 버팀목이 된다. 그렇게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미소를 머금고 살아가다 미소가 옅어질 때쯤 나는 다시 배낭에 짐을 챙겨 무작정 떠나기로 다짐했다.
귀국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제주도에 계신 외할머니댁에 가기 위해 다시금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은 여전히 여행을 떠나기 위해 북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나 역시 오랜만에 가는 제주도에 설레었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승무원의 환영 인사를 받으며 비행기 좌석에 앉았다. 잠잠하던 비행기는 어느새 엔진소리를 내며 이륙 준비를 마쳤고 이내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기내에 울려 퍼졌다.
"띵동"
소리와 함께 비행기는 활주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여행의 두근거림이 다시금 나를 동심으로 가득 찬 어린아이로 만들었다. 새파란 하늘을 향해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찬란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울 나와 당신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기도한다.
Que le vaya b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