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현무 Dec 07. 2022

팀빌딩부터 투자포기까지

앤틀러 1기 참여후기

올해로 저는 창업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지 4년이 되었습니다. 21살때 처음 스타트업에 관심이 생긴 저는 무작정 법인설립부터 하고, 허울 뿐인 IR자료를 가지고 투자자를 만나러 다니곤 했습니다. 당연히 제품도, 고객도 만들지 못하고 1년만에 폐업하였습니다. 이후에는 VC를 잠깐 다니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면서 꾸준히 창업의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지난 4년동안 삽질을 반복하면서 제가 깨달은 점은 PMF를 찾기 위해 시간을 쏟는만큼 팀빌딩에도 그래야 한다는 점과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머리로는 당연히 처음부터 이해했지만, 실제로 이를 믿고 공감하기까지는 4년이 걸린 것 같습니다.


항상 준비단계에만 머물렀던 제 창업의 여정이 올해 드디어 한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예민하고 신중한 성격의 제가 정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공동창업자 고창현님과 팀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창현님과 저는 앤틀러를 통해서 만났습니다. 앤틀러는 올해 한국에서 처음 배치를 시작한 글로벌 엑셀러레이터로, 약 80여명의 예비창업자를 선발하여 팀빌딩부터 투자유치까지 지원합니다. 참여자는 모두 퇴사를 하고 풀타임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정말 열정적인 앤틀러 팀과 화려한 이력의 어드바이저와 함께 세상을 바꾸기 위해 10주동안 밤낮없이 달리게 됩니다.


앤틀러 1기 참여 중인 박현무 (왼쪽), 고창현 (오른쪽)

제가 앤틀러에 참여한 이유는 리스크 분배의 깊이가 같은 사람들과 “될때까지 버틸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에는 변수가 정말 많고, 성공하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합니다. 이를 모두 파악하고 하나의 방정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유일한 공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될때까지 버티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될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으로 팀이 모여야 합니다. 아이디어로 모인 팀은 아이디어가 실패했을 때 팀이 유지될 명분이 사라지고, 대부분의 아이디어가 실패합니다. 때문에 저는 서로를 위한 창업을 설득하고, 인디언 기우제처럼 될때까지 버틸 수 있는 팀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창현님은 처음 대화를 나눌때부터 남다른 의지가 느껴져 프로그램 시작도 전에 팀을 이루었으며, 실제로 프로그램 기간동안에는 앤틀러 오피스에 침낭을 가져다 생활할 정도로 독보적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줬습니다. 제가 창현님과 팀을 이룬 또 다른 이유는 서로 맞춰줄 여지가 있는 사람이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의 팀빌딩을 경험해본 후 저는 완벽한 핏의 코파운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아직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팀을 이루기 위한 최소조건이 갖춰진다면,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장하여 서로 맞춰갈 수 있는가입니다. 누구보다 호기심이 많고, 무엇이든 직접 알아내야 적성이 풀리는 창현님은 제게 귀인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앤틀러 참여 당시 아이템 'Vividly'

앤틀러에서 저희는 난독증을 위한 인공지능 솔루션으로 투자제안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가 눈앞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에 내실을 다지는 과정을 거치다보니 팀이 확실한 방향성 없이 투자라는 마일스톤만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적으로 제 책임이 컸는데, 아이템 선정에 있어서 의사결정이 너무 느렸고, 결단력있게 행동하지 못하여 내부적으로 조성된 초조함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됐었습니다. 뒤늦게라도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대표로서 가지는 의무와 개인으로서 가지는 신념 사이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하였고, 결국 투자를 포기하고 원점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앤틀러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후 제가 가장 처음으로 한 것은 바로 팀으로서 함께 이루고 싶은 비전을 수립하는 것이였습니다. 아이디어가 아니라 사람으로 모인 팀이다보니 개인으로서 도달하고 싶은 위치는 서로 공감했지만, 정작 팀으로서 일으키고 싶은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했습니다. 우리가 이루고 싶은 미래는 무엇인지, 얼마나 큰 흐름에 올라타고 싶은지, 앞으로의 서사에 있어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될지 등 단순히 같이 해보는 재밌는 경험이 아니라 나의, 우리의, 모두의 삶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와 창현님과 함께 했었던 다른 공동창업자는 아쉽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하였습니다.  


결과론적이지만 투자를 포기한 것은 좋은 선택이 되었습니다. 미묘하게 벌어졌던 틈을 발견할 수 있었고, 현재는 어느 때보다 결속력 있는 팀과 함께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비록 인내의 연속이였던 창업의 여정에서 투자는 달콤한 제안이였고, 투자를 포기하는 것은 조바심을 일으킬 수도 있었으나, 얕지만 나름 의미있는 지난 4년의 경험을 기반으로 스스로 가장 원하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물으며 지혜롭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오늘의 저는 조금 더 성장하였습니다. 


비전을 만들어가면서 저희는 사업기회를 탐색하고 PMF를 찾기 위한 사고를 구조적으로 수립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거쳤습니다. 해당 과정의 결과에 대해서는 다음 회고를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2022년 회고 1부  

작가의 이전글 우월감과 부러움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