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F를 찾기 위한 프레임워크
스타트업 업계는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한파가 먼저 닥친 실리콘밸리는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 성장이 아니라 생존을 외치기 시작했고, 대규모 구조조정이 곳곳에서 속출하였습니다. 국내도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자금을 미처 조달하지 못한 기업은 일주일만에 운명이 바뀌었고, 기업가치의 이례없는 폭락은 유니콘 스타트업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내년에는 나아지길 바라고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의 두려움은 해소되지 않고 독처럼 퍼져나갈 뿐입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창업을 했습니다. 그냥해도 될까말까한 창업을 지금 이시기에 하는 것을 어쩌면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장 그 자체인 스타트업은 긴축하는 경제에서 아주 역설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도, 소비자도 지갑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성장은 어쩌면 시장이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시장은 해석하기 나름이고, 성장은 결과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측면에서 저희가 부리기 시작한 객기는 나름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초기 스타트업은 그래도 혹한기의 영향이 덜합니다. 좋은 팀은 여전히 투자 받을 수 있고, 오히려 정말 한팀처럼 생각해주는 좋은 VC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처럼 힘든시기에 형성되는 신뢰관계는 분명 장기적으로 큰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두번째로 유니콘 기업을 만드는데 5-10년이 걸린다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경제 사이클은 돌기 마련이고, 앞으로 2년을 버틸 수 있다면 사업이 궤도에 오른 시점에 시장의 흐름에 올라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은 좋은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주변의 많은 대표분들께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마음고생 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영부진을 바로잡기 위해 썩은부분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서 팔다리를 스스로 꺾어야 되는 상황은 잔인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떠나보내게 되는 팀원분들과의 시간이 마냥 허비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배 창업자분들께서 먼저 눈여겨보고 합을 맞춰본 인재를 팀에 모시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Pay it Forward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양분 삼아 초기 스타트업은 성장하고, 과거의 인연으로 이어진 스타트업 생태계는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함께 살아남는 미래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안좋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위한 해석입니다. 실제로는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회사와 관계없이 개인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생기기 마련인데, 제 공동창업자 창현님 같은 경우 지난 달부터 금리가 급격히 올라 점심을 고구마로 때우기 시작했고, 외주를 병행하면서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창현님의 끈질김에 다시 한번 감탄하기도 했지만, 대표로서는 경각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창현님께서는 본인의 상황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우리의 페이스를 지키면서 나아가자고 격려하셨습니다. 약속된 미래가 없는 스타트업의 여정에서 공동창업자의 비굴함은 서로에게 정말 큰 힘입니다. 그래서 창업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함께 창업하였습니다.
2022년 회고 1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이전에 난독증을 위한 인공지능 솔루션으로 투자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템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뚜렷한 비전이나 기준없이 단지 공동창업자가 인공지능 개발자이고, 인공지능이 트렌드라는 점에서 시작한 아이템이였습니다. 마냥 잘못된 접근방식은 아니지만, top down으로 거시적인 소비흐름을 점검하고 메타인지의 과정을 거칠필요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래서 PMF를 찾기 위한 프레임워크를 먼저 수립하였습니다. 해당 프레임워크의 첫번째 단계는 미래의 방향성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그려보고 사업기회를 탐색하는 시작점을 찍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번째는 해당 미래에 있어서 고객 페르소나를 분류하고 소비자의 욕망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욕망은 서비스의 핵심가치가 돈을 지불하고 싶을 정도인지 파악하는 확실한 기준으로 작용합니다.
마지막은 프레임스토밍을 통해 문제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프레임스토밍이란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 즉 관점을 수립하는 과정입니다. 핵심은 올바른 질문을 하는 것으로, 관점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싶은지 본인의 주관을 결정해야 합니다. 문제가 하나더라도 해결방법은 무수히 많기 때문에 프레임스토밍은 막연한 창업여정에서 나침반을 마련하는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아이템 선정에 있어서 AI는 정말 매력적인 분야입니다. 특히 2022년 하반기는 Stable Diffusion, GPT3 등 Generative AI가 산업전반에 혁신을 예고하면서 인공지능의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시점이였습니다. 공동창업자인 창현님 또한 삼성SDS에서 자연어처리를 전문적으로 다뤘던만큼 초반에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사업기회를 탐색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은 서랍장에 넣어두기로 하였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대표로서 인재확보가 어렵습니다. 인공지능만큼 인재가 중요한 분야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테크 베이스가 없는 대표가 유능한 인재를 설득해서 모셔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공동창업자가 인공지능 개발자이긴 하지만, 결국 설득의 연속인 스타트업에서 대표의 역할은 책임을 떠맡기는게 아니라 위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역할분배 측면에서 더 믿고 맡길 수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라면 분명 다시 고려해야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창업을 하고 싶어서 문제를 찾고 있는 팀에게 인공지능은 솔루션 위주의 생각을 유도합니다. 인공지능이라는 키워드를 분야별로 붙여보면서 혁신을 꿈꾸지만, 불편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기발한 가치를 제공하는 것에 치우치게 됩니다. YC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Solution in Search of Problem (SISP)라고 칭하며, 초보창업자가 흔히 하는 실수이자 꼭 피해야 하는 사업탐색 경로라고 이야기합니다.
개인적으로 SISP가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새로운 시장은 문제가 아니라 솔루션으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소셜 미디어, 스마트폰 등의 혁신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창의적인 발상에서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소비자는 누구도 마차가 느려서, 친구의 소식을 접하지 못해서,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찍지 못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현실화되자 사람들은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기업이 탄생하면서 시장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시장을 여는 창업에는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역량입니다. 내가 만든 가치로 인해 미래가, 혹은 미래에는 내가 만든 가치가 어떻게 변화할지 알아야 혁신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저에게 꽤나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인공지능 분야에서 유니콘 기업을 만들고 싶다면 1년 뒤 미래가 아니라 5년, 10년 뒤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스스로 역량과 이해가 부족해 막연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변수가 무한히 많은 스타트업은 굉장히 결과론적이고, 운적인 요소가 매우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운 나쁘게 실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거시적인 경제흐름에 대응하면서 운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10년 뒤가 아니라 1년 뒤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미래에 뛰어들어 고객이 돈을 지불할만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도전으로 저희는 4050 중장년 시장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세번째 회고를 통해 전해드리겠습니다.
2022년 회고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