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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꽃신내꽃신 Sep 22. 2023

김려원의 시를 품은 울산12경 12.강동·주전 몽돌해변

다르륵…다륵다륵…마음 간질이는 몽돌의 노래


주말ON       

시를 품은 울산 12경  

            

기자명 김려원

입력 2023.09.21 20:16

수정 2023.09.21 22:21


다르륵…다륵다륵…마음 간질이는 몽돌의 노래


[주말ON-김려원 시인의 시를 품은 울산 12경] 12.강동·주전 몽돌해변


청명한 하늘 흰구름 아래
푸른 파도가 쓰다듬는 소리
둥글게 굴러가는 음표들
두 발 아래서 자꾸 아우성친다
하나하나 각양각색 매력의 몽돌
우리네 모습도 이렇겠지



동구 주전의 몽돌 해변의 전경. 울산신문 자료사진


   평일 하오의 동해안로를 씽씽 달린다. 주전항 이정표를 따라 바닷가 마을 오솔길로 접어든다. 주전해안로에 들어서자마자 시야를 사로잡는 새빨간 탑. 올여름 뙤약볕은 저곳에서 얼마나 타올랐을까. 주전항 북방파제의 삼층석탑등대가 청명한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비할 바 없이 붉다.


   지난해 벚꽃 날릴 때 저 등대를 마주 보았으니 여섯 계절 후의 만남이다. 오랜 벗을 마주친 듯 나의 입가에도 붉은 햇살 한 줌이 핀다. 내항에 정박한 십수 척의 어선이 점점이 떠 있는 흰구름을 나른히 흔든다. 어선 옆구리에 부딪는 출렁임을 들으며, 긴 방파제를 걸어서, 붉은 등대를 다시 마주하고픈 충동을 누른다. 오늘 나를 부르는 곳은 등대가 아니라 몽돌해변. 발바닥을 간질이는 몽돌 소리, 파도가 쓰다듬는 몽돌 소리 촤르륵 싸르르 다르륵 다륵다륵. 


가장 먼 여행은/ 몽돌 찾아가는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몽돌해변으로 가는 것이다// 가장 행복한 여행은/ 몽돌 소리를 가슴으로 듣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몽돌해변을 거니는 것이다// 라며 몽돌과의 해후를 부추기는 최주철의 '몽돌'을 웅얼거리며 주전과 정자와 강동의 해변으로 간다. 이 구간을 잇는 해안도로는 동해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힌다. 


 주전해변 초입의 화장실 통로 벽에 걸린 문구가 예사롭지 않다. '몽돌(모가 나지 않고 둥근 자갈돌) 채취 시 공유수면 관리 및 매립에 관한 법률 제62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채취라는 낱말이 모호하나, 몽돌이 아무리 예쁘고 신기해도 보고 즐기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어둠속에 숨었던 검은 몽돌이 아침 햇살에 매끄런 몸살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주전해변은 동구 주전항에서 북구 당사항까지 이어진다. 이곳의 몽돌밭은 해안 1.5킬로 범위에 펼쳐져 있다. 차락차르락 차륵차라락, 걸음을 뗄 때마다 신발 밑이 아우성이다. 막 태어난 어린 폭포수를 듣는 것도 같다. 여름 성수기가 지난 해변엔 사람이 드문드문하다. 몇몇 물놀이기구도 드문드문 몰려있다. 그네들의 추억이 태양의 날에 종종 머물리라. 청년 한 무리가 파도와 몽돌의 경계를 신나게 뛰어다닌다. 


 커다란 돗자리 위의 캔맥주와 라면 봉지와 냄비 등속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 중이다. 몽돌을 한 줌 집어 손바닥에 펼쳐본다. 모나지 않은 타원 하나하나의 크기와 모양과 색깔이 참으로 다양하다. 어느 날 붕새 한 마리 나타나 80억 5,000만 인류를 한데 모아 내려다볼 일이 있다면, 우리네 모습도 이렇듯 각양각색이겠지. 각양각색의 몽돌이 내는 소리가 발밑에서 자르륵자르락, 파도를 싣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소리가 차르락차르륵. 몽돌과 파도는 귀를 기울일 때마다 다른 소리를 낸다. 


 중간쯤 걸으니 주차장 변에 선 '울산 12경' 입간판이 보인다. 해안도로 가에는 커피숍이 늘어서 있다. 나와 커피는 참새와 방앗간 관계. 쿠폰으로 공짜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강동·주전 몽돌해변이 울산 12경이 된 사연을 마주한다. '부딪치며 단단해지고 맞닿으며 둥글어진 몽돌 자갈은 바다가 지나온 오랜 시간의 얼굴. 푸른 파도가 건네는 맑은 소리는 덤.' 파도와 몽돌이 만나는 소리는 거제·완도·태안 해변 등지에서도 들을 수 있으나 울산이 지닌 매력은 남다르다. 대한민국의 거대산업을 이끈 사람들의 맥박이 파도에 얹혀 힘차게, 힘차게 몽돌을 밀어 올린다. 



동해의 어둠을 밀어내는 일출이 떠오르자 북구 강동 해안가에 잠자던 몽돌이 햇빛에 반짝이며 깨어나고 있다. 울산신문 자료사진



큰 파도 철퍽철퍽 도리깨질하고 있다/ 짜르르 몽돌 잔뜩 슬어놓던 바닷새야/ 둥글게 굴리는 음표 주워 담고 있느냐  -이영필 '주전바다'부분   


 몽돌 잔뜩 슬어놓고 날갯짓하는 갈매기가 푸른 바다에 흰구름을 물어 나른다. 동구와 북구의 경계인 구암마을 이정표를 지난다. 동해안로를 따라가다 당사항으로 들어선다. 어물방파제에 우뚝한 물고기등대가 아스라하다. 당사항의 팔각한옥지붕등대가 물고기등대를 한없이 바라보고 섰다. 수십 척 어선이 어항에 묶여 흔들린다. 당사자연산직판장엔 의자를 내놓고 나와앉은 주인장들이 종이컵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물고 있다. 바다를 떠나온 고기들은 활짝 편 지느러미로 수족관 속을 날렵하게 헤엄친다. 손님용 식탁에는 아무도 없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한 주인장에게 말을 걸어본다. 회를 사는 건 아니라 했지만 뭐든 물어보라니, 행인이 반가운 모양이다. 


 "실제로 저마저도 회를 먹고 싶지 않습니더. 특히 젊은층이 방사능에 더 민감하지예. 2세를 생각해야 하니까예. 대안도 없이 온 나라가 들썩이니 수산업자들만 죽어나는 겁니더. 주말은 말이 필요없고예, 평일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는데 인자는 지인들이나 가끔 찾아옵니더. 저 팔딱대는 아아들을 다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예." "어선들은 오늘 아침에도 고기잡이를 나갔십니더. 받아주는 데가 없으니 답답해도 놀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예." 


 그녀의 깊은 한숨에 나도 덩달아 한숨이 나온다. 적절한 정책이 하루빨리 시행되길 바란다는 말밖엔 작별인사를 달리할 수가 없다. 막힌 바닷가 길을 돌아 나와 정자항으로 달린다. 워낭 소리 밀려드는 바다의 성소, 윗우가항을 지난다. 늘어선 장어구이 포장마차들이 한 시절, 전국의 미식가를 불러모았다는 제전항도 지난다. 갈매기 두 마리가 가로등 꼭대기에 나란히 앉아 그들의 언어를 나누고 있다. 


 멀리서 빨강과 하양의 귀신고래등대가 손짓한다. 물고기 몇 마리가 수면을 차오른다. 크고 작은 백여 척 어선이 정박한 정자항. 줄 지어선 횟집들. 그러나 이토록 고요한 경우를 언제 본 적 있었는가. '매주 월요일 10% 할인행사'와 '일본산 수산물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플래카드를 건 정자활어직판장에도 주인장들만 초조히 자리를 지킨다. 마치 구경꾼 같아서 들어서기가 민망한 지경이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횟감을 고르던 날들은 꿈이었는가. 안타까운 심경으로 정자항을 벗어난다. 


 바닷가 길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달려드는 확 트인 강동몽돌해변. 뜨거운 계절을 잘 견뎌낸 이들이 산이 아닌 빌딩 숲을 등 뒤에 두고, 홀로 또는 삼삼오오 몽돌의 한때를 즐기는 중이다. 그들의 엉덩이와 발에 눌린 몽돌들이 아우성과 무음을 종일 반복한다.   



동구 주전 해안가의 몽돌. 울산신문 자료사진



우글거리는 입들, 입은 입에서 나온다 통째로 입이다 그 사이로 헤집고 들어와 무엇을 콕콕 쪼아대는 갈매기의 주둥이를 본척만척 어떤 입도 발설하지 않는다// 몇 개의 입은 납작하게 침대처럼 오래 누워 있다/ 또 다른 입은 모자처럼 푹 눌러쓰고 있다/ 무한히 접힌 말들/ 말이 채 닿기 전에 먼저 닿은 입들  -권주열 '해변의 몽돌'부분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동해안로를 다시 올랐다가 화암길로 접어든다. 바닷바람이 몽돌을 쓰다듬는 소리가 차창으로 몽글몽글 밀려든다. 능소화 줄기꽃이 늘어진 폐가를 지나 강동화암주상절리 앞에 섰다. 동해안에서 가장 오래된 용암주상절리. 2,000년간 해와 파도와 바람에 맞서온 장엄한 바윗돌에서 신이한 기운이 너울같이 몰아쳐 온다. 오랜 시공간을 피운 화암(꽃바위)에 몽돌같이 많은 사람이 찾아들면 좋으련만…. 


 조잘조잘 노래하는 화암해변의 몽돌을 밟는다. 맨발로 걸으니 지압을 받는 기분이다. 눈앞에서 한 남성이 물질 중이다. 문 꽁꽁 걸어 잠근 화암어촌계사무실 벽면의 '해산물 채취금지' '적발 시 형사 고발' 푯말이 이젠 두렵지 않은 걸까. 강동해변은 북구의 어물동에서 신명동까지 12킬로 거리에 이른다. 동해안로에서 신명로로 내려선다. 잦은 너울 침범으로 높다랗게 세워진 신명방파제가 멀찍이 서 있다. 방파제 구석구석에서 미늘을 물고 오르는 바다생물의 눈망울은 오늘도 변함없이 초롱초롱하리라.


(…)/ 어떤 가슴도 구름을 안다 못하지/ 긴 여로에서/ 방황의 온갖 아픔과 기쁨/ 겪어 알지 못하면// 하얀 것, 정처 없는 것들을 나는 사랑한다네/ 해나 바다나 바람 같은/ (…). 


 헤르만 헤세가 1902년에 노래한 '흰 구름들'이 몰려와 푸른 바다 위를 흐른다. 백 년 넘게 여행 중인 구름이 오늘 태어난 구름을 껴안고 몽돌의 노래로 흘러간다. 촤르륵 쏴르르 다르륵 다륵다륵. 왔던 길 되돌아가는 길. 우연찮게도, 주전항등대를 만나러 벚꽃같이 달려온 날에 동행한 둘째가 오늘도 함께 했다. 조수석에서 아들의 어깨를 토닥거려준다. 흰구름을 스쳐 지난 서녘의 초가을 태양이, 무수한 은빛으로 파닥거린다.  김려원 시인 climbkbs@hanmail.net



김려원 

news@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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