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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갱 Nov 10. 2022

한국, 내 나라가 불편한 이유

얼마 전 우리는 미국 온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2주간 방문했다. 매년 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한국을 3년 만에 가게 된 이유는 이민 오자마자 터져버린 코로나 때문인 탓도 있지만, 남편의 이직과 타주로의 이사 그리고 나의 적응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내 나라에 가게 되어서일까. 가기 전부터 내 마음엔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심지어 조금은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정말이지 나 혼자라도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싶을 만큼 가기 싫었다.


내 우울감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뚜렷한 방문 목적이 없기도 했고 한국에 간다는 건 그저 여행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걱정이 앞섰던 것이 가장 컸을 것이다. 또 내 부모님과 함께 있는 그 상황 속에서 나는 다시금 실망감을 얻게 될 것이 자명하기에 그 순간을 피하고자 했던 것 같다.


어떤 일에 대해 정면돌파를 하는 성격이지만 이 문제에서 만큼은 내가 상처를 덜 받고 싶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라.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지인들에게 내가 한국에 간다고 말을 하면 모두들 부러워한다. 난 하나도 기쁘지 않은데. 한국에 있는 지인들은 왜 그리 짧게 오냐고 한다. 난 더 있고 싶지 않은데.


한국으로 떠나기 전,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연 가득한 삼 남매가 등장하는데 그중 첫째와 막내가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힘들어 한 사람은 결혼을 선택하고 한 사람은 해외로 도피한다. 어? 난 그 두 가지를 다 해낸 건가? 웃음이 나왔다.


물론 현실 도피 성격의 결혼은 절대 아니었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힘든 나 이기에 미국 이민 결정이 어렵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고 결혼과 동시에 이민을 왔으니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셈이었다.




한국 여행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전은 없었다. 여행은 당연히 아니었고 시차 적응도 안된 바로 다음날부터 가족과 친척을 만나며 ‘거짓 웃음’을 날려댔고, 친구들의 퇴근 후 모임을 갖으며 ‘하품’을 날려댔다. 물론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구들의 배려가 고마웠고 막상 만나니 더욱 반갑고 좋았다. 그들이 싫다는 게 아니다. 한국이라는 내 나라에 그다지 가고 싶지 않은 나 자신이 싫고 내 마음이 슬펐다.


중간엔 휴대폰이 고장 나 유심 마저 말썽이었다. 내 명의로 된 휴대폰이 사라지니 은행업무를 비롯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낙동강 오리알 된 기분. 내 나라가 불편했다. 사람들은 또 왜 이리 많은가. 여의도 한복판이 시댁이라 핫플레이스를 비롯해 서울 전역의 맛집이 다 들어와 있어 여의도를 떠날 이유를 대지 못했다. 잠이 부족해 피곤하니 뭘 먹어도 크게 만족하지 못했다.


이태원, 압구정, 홍대, 연희동, 경복궁 등 연애할 때 자주 가던 곳을 단 한 군데도 방문할 수 없었다. 남편과의 추억을 되새김질 하기에는 매우 보잘것없는 2주였다. 오히려 미국에 있는 3년 동안 싸움이 없었던 우리인데 처음으로 다투기까지 했다.


서로 예민하고, 기분이 들쭉날쭉 이었다. 이왕 온 거 의무감이던 뭐던 긍정적으로 하자는 남편과 나는 다 싫다. 내가 힘든 것에 왜 공감을 못하냐. 앞으로 당신 혼자 한국에 와라. 모진 말이 나왔다. 알고 보니 생리 전 증후군이었다. 생체리듬이 깨지니 제멋대로 신호도 없이 튀어나온 것이다. 남편은 나의 행동을 이해하려 했고 다행스럽게도 남은 5일 정도는 평안했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빨리 미국에 가고 싶었다. 미국의 삶에 익숙해진 걸까. 나 그리고 남편만을 생각하는 삶이 가능한 곳이기에 여러 사람을 챙겨야 하는 게 버거웠던 걸까. 지하철을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건 편하지만 빽빽한 머리들을 보며 속은 왜 이리도 답답할까. 어딜 가든 한국어가 통하고 고객센터와의 여러 번의 통화도 나 혼자 가능한 이곳이 뭐가 그리 불편했던 걸까. 예쁜 것들이 즐비하고 사고 싶은 게 넘쳐나는 이곳이 나는 왜 그리 못마땅할까.


물론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니 사는 동안 보이지 않았던 산과 강이 어우러진 도시 서울은 예뻤고, 여행 차 대전에 잠시 내려가니 대청댐 주변에 멋진 산새가 좋았다. 어디서든 밤에 걱정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고, 친정 엄마가 해주는 밥도 맛있었다.


그럼에도 나라는 사람에겐 육체적인 편안함이 큰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정서적으로 편안한 곳을 찾다 보니 한국보단 미국이었을까.


아니,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공간 내 집,

즉 자유와 안정감이다.


그래. 꼭 그곳이 미국이라는 법은 없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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