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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뭇잎 Feb 05. 2024

꼭 돈을 벌어야만 하나요

“필리핀으로 단기 선교 가고 싶어요.”

“뭐? 필리핀?”

학기 중에 교회 대학생이 가는 필리핀 단기 선교단에 합류하고 싶다는 희선이를 보며 나는 눈만 크게 뜬 채 긴 말은 하지 않았다. 대학교의 방학과 특수학교의 방학은 일정이 맞지 않아 12월 중순에 떠나고 싶다는데, 내가 잘못 들었나 했다. 차마 밖으로 말을 내뱉지는 못했지만 내 진심은 이랬다. 

‘네가 지금 필리핀 갈 때야? 면접 보고 취업할 생각을 해야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희선이가 혼자 갈 수 있을까?     


희선이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핸드폰 부품 회사에서 1년 동안 일 했다. 직무는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동안 작은 부품을 같은 자리에 끼워 넣는 단순, 반복 작업이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면서 잘 적응했지만 좋은 시절은 길지 않았다. 회사가 불경기에 휘청거리다 문을 닫았다. 지적장애가 있는 희선이가 다음 진로로 선택한 것은 특수학교 전공과 취업준비반이었다. 장애 학생이 학령기를 마치고 성공적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든 곳이 전공과이다. 직업 재활 훈련과 자립 생활 훈련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있다. 희선이는 전공과 학생 중에서 예의 바르고 성실하기로 단연코 일등이었다.


나는 희선이가 취업하여 돈 벌기를 바랐다. 경계선 지능을 가진 부모, 중증 지적장애 언니와 남동생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희선이는 장애등급 폐지 전에 지적장애 2급을 받았다. 중증 장애로 진단을 받았지만,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드는 일, 계산기로 하루 매출을 계산하는 일을 혼자 할 정도의 능력이 충분히 되었다. 카페 손님의 감정적인 대응이나 무리한 요구도 대처할 수 있을 정도의 문제 해결 능력도 있었다. 삼 남매 중에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희선이뿐이었다.   


A 호텔 식기 세척 일자리 공고문을 보았다. 서류, 면접을 통과한 후 중증장애인을 위한 훈련 기간 3주를 잘 보내면 정식으로 A 호텔 직원이 되는 일이었다. 세상에나, 정규직이라니!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장애인을 채용하는 기업에서 훈련 기간을 마치자마자 정직원으로 뽑는 일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9년, 최저시급 8,350원, 8시간씩 주 5일을 일하면 약 170만 원의 월급을 받게 된다. 여기에 희선이 부모님이 버는 호프집 아르바이트비까지 더하면 희선이 식구 5명이 살기엔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는 계산이 나왔다. 다만, 내가 걱정되는 것은 호텔 식기 세척은 가정 설거지와 다르다는 점이었다. 일단, 그릇이 무겁다. 하나하나 꼼꼼히 씻어야 하지는 않지만, 무거운 그릇을 애벌 씻기를 하여 커다란 식기 세척 기계에 넣는 일은 고되다. 단순하지만 기계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를 맞으며 무거운 그릇을 옮기다 보면 허리가 끊어질 듯하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건장한 남학생을 취업시키기 위해 함께 식기 세척을 한 적이 있다. 당시 3㎏ 이상 살이 빠졌던 터라 난 그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 그 뒤로 식기 세척 직종에는 절대로 학생을 보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내가 또 아이들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A 호텔이라는 간판과 정규직이라는 조건에 혹해서.   


나는 주저하면서 직무의 장단점을 읊었다. 희선이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할 수 있어요.”라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지원했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성실하고 한결같은 태도로 보답하는 직원이 되겠습니다.' 문장으로 마무리하며 지원서류까지 최선을 다해 써왔다. 기특했다.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하는구나 싶어 감탄했다. 희선이는 훈련 기간 3주도 훌륭히 해냈다. 그러나, 결국 입사하지 않는 것으로 마지막에 결정을 내렸다. 다시 A호텔 식당과 라운지에서 일할 직원을 뽑기 위해서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담당자들은 난감해했다. 희선이가 직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해준 직무지도원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며 준비한 희선이가 돌연 마음을 바꾼 이유를 재차 물었으나 답은 “죄송합니다. 저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요.” 만 반복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일의 장단점에 관해서도 설명을 했고, 정말 괜찮겠냐고 몇 번이나 물었고, 웃으면서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더니 지금 와서 못하겠다니.'

마음속에서는 다다다 할 말이 빠른 속도로 떠올랐지만, 한숨 한 번 쉬고 “그래, 그러자꾸나. 다음에 좋은 자리 있으면 다시 도전해보자.”로 마무리했다. 희선이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했다기보다는 힘이 빠져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필리핀에 가겠단다. 다음 취업을 위해 어떤 자리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선교라니. 당사자는 애당초 돈 버는 일에 마음이 없는데 주변 어른들만 북 치고 장구 치고 한 게 아닌가. 뒤로도 좋은 일자리 얻을 몇 번의 기회를 놓쳤다. 다행히 졸업하면서 가까스로 카페 바리스타로 하루에 4시간씩 일하게 되었다. 4시간 일해서는 한 달 살기에 빠듯할 텐데 걱정했지만, 나도 이제 놓기로 했다. 그렇게 희선이는 자리를 잡는가 했다.     


졸업한 희선이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볼 때가 있다. 자주 바뀐다. 화장을 짙게 한 희선이, '인생네컷'에서 꽃받침 하면서 친구와 사진 찍은 희선이, 여행 간 바닷가에서 사진 찍은 희선이, 또 어떤 날에는 프로필 사진을 싹 다 지우기도 한 희선이의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스무 살이 된 아이가 화장하고, 여행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어른인 내가 너무 ‘돈, 돈, 돈은 언제 어떻게 버느냐?’의 틀에서 한 학생을 바라본 것은 아닌지. 취향이고 개성이고 자존감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장애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내가 아닐까. 희선이가 가족을 위해 애써야 하고, 취업해야 함을 매우 당연하게 여겼다. 희선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래를 위한 공부나 여가가 보장되지 않는 삶을 살 필요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는데. 저마다의 다른 삶에 정답지를 내밀고 이대로 살아야만 한다고 강요했다.     


희선이라고 다르지 않지. 더 예뻐지고 싶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고 싶었을 테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내려놓고 스물 청춘을 맘껏 즐기고 싶었을 테지. 

출발선부터 다른 불공정 게임을 하느라 고단한 삶을 살아갈 희선이에게 응원의 안부 메시지가 너무 늦은 일은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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